서울 강남구의 다세대주택 월세방에 사는 디자이너 최모(26)씨는 지난달 직장을 잃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회사가 아예 문을 닫아버렸다. 새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데, 당장 가장 큰 문제는 월세 55만원이다. 보증금으로 대납해도 10개월 정도만 버틸 수 있다. 최씨는 “그나마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주변에선 가장 저렴하다”며 “하반기에도 직장을 못 구하면 서울 외곽의 고시원이라도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고용절벽’ 앞에 선 청년들이 집에서도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청년들이 주로 거주하는 서울 소형 주택들의 주거비가 소득이 끊긴 청년들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인 데다 이마저도 공급 부족으로 꾸준히 오르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청년 주거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18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단독 및 다가구주택 전ㆍ월세 가격은 모두 전월 대비 0.01% 상승했다. 그 중에서도 소형주택은 상승폭이 더 컸다. 같은 달 전용면적 40㎡ 이하 서울 연립 및 다세대주택 전세와 월세는 각각 전월보다 0.03%와 0.01% 올랐다. 부동산정보업체 직방이 원룸을 포함한 서울 단독ㆍ다가구주택의 서울지역 월세 실거래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봐도 올해 평균 환산 월세가격은 55만7,500원으로 지난해 대비 1.54% 올랐다. 최근 재개발 등 정비사업으로 노후 주택이 사라지는 등 공급량이 줄고 있는 것이 임대료 상승 배경으로 꼽힌다.
문제는 임대료 상승이 청년들에게 더 큰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의 ‘2018년도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20~34세 청년가구 42.4%가 단독주택에 살고 있다. 연립 및 다세대주택에서 거주하는 비율도 11.3%에 달했다. 또한 청년가구의 절반이 넘는 51.7%는 월세방에서 살고 있으며, 전세 거주자는 24.3%였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사태로 고용시장의 ‘약한 고리’인 청년들의 실직까지 크게 늘고 있다. 통계청이 13일 발표한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15~29세 청년층 취업자는 2009년 1월 이후 최대치인 24만5,000명이 감소했다. 추가 취업을 원하는 취업자와 잠재경제활동인구까지 포함한 확장실업률 또한 청년층에서 26.6%를 기록했다.
이런 까닭에 직장을 잃은 청년들이 주거비 부담을 감당 못하고 집까지 잃는 사례가 크게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 서남권의 월세방에 사는 이모(26)씨는 “최근 건물주로부터 ‘코로나19로 사정이 힘들어 계약한 시기에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으니, 빨리 방을 빼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며 “당장의 형편에 맞는 방을 찾기가 힘들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청년 주거비용을 지원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는 청년 대상 월세 및 보증금 대출을 지원하고 있고, 부산시는 청년 3,000명을 대상으로 10개월간 월세를 10만원씩 제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소득 조건 등 수혜 대상 조건이 까다롭고, 신청 접수 방식이어서 해당 정보를 모르면 임대료 지원을 받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좀 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비상한 상황인 만큼, 정부가 빠른 시일 내에 재정 투입 등을 통해서 청년 주거비 문제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라며 “집과 직장을 동시에 잃으면, 개인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물론 사회적 비용도 막대하기에 현재 청년정책을 뛰어넘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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