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배ㆍ보상 책임’ 삭제 요구… 여, 전격 수용 개정안 처리 합의
여야는 20일 본회의를 열고 과거사정리위원회를 재가동해 형제복지원 등 군사정권 시절 인권유린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 처리에 잠정 합의한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미래통합당이 법안 처리의 선결 조건으로 제시한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배ㆍ보상 책임 삭제’를 더불어민주당이 수용키로 가닥을 잡으면서다. 다만 배ㆍ보상 조항이 통합당 ‘몽니’로 무산되면서 반쪽자리 처리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가 막판까지 쟁점으로 삼았던 지점은 과거사법 개정안 제36조다. 당초 개정안에서는 정부가 과거사위 조사 결과를 토대로 ‘피해에 대한 배상 방안 등을 강구한다’고 적시했다. 현행 법에서는 ‘피해ㆍ명예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라고만 돼 있었지만, 정부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넣은 조항이다. 진상규명 후에도 개별적으로 국가를 상대로 길고 긴 배상금 청구소송 절차를 밟아야 하는 수만 명의 피해자를 일괄ㆍ신속 구제하자는 민주당 입장이 반영됐다. 하지만 통합당이 “배ㆍ보상 (예측) 규모가 4조7,000억원”이라며 해당 조항을 삭제를 처리의 선결조항으로 내걸면서 20대 국회 내 처리가 불투명해지자 민주당도 일단 수용키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일단 진상규명이 시급하다”고 수용 배경을 설명했다.
때문에 민주당 내에서는 “통합당이 몽니를 부리고 있다”는 불만 기류가 강하다. 우선 해당 조항은 어디까지나 ‘선언적’ 의미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진상규명을 거쳐 실제 배ㆍ보상까지 이어지려면 형제복지원 등 개별 사건마다 구체적인 배ㆍ보상 기준과 금액을 정한 특별법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실제 2018년 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과거사법 개정안 논의가 시작되고, 지난해 10월 행안위 문턱을 넘기까지 통합당은 이 조항을 문제 삼지 않았다. 협상을 잘 아는 국회 관계자는 “통합당이 처음에는 과거사위 구성을 문제 삼다 이 부분이 해결되니 배ㆍ보상을 꺼냈다”며 “애초 처리 의지가 없었다”고 했다. 통합당은 19대 국회 때도 과거사위를 재개하고 배ㆍ보상 특별법을 제정하는 개정안에 대해 ‘돈’을 이유로 반대했고, 결국 폐기됐다.
20일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이르면 연말께 과거사위가 2010년 종료 이후 10년 만에 활동을 재개한다. 일단 선감학원과 형제복지원 등 20여곳의 피해자 단체들은 ‘선(先) 과거사위 재개→후(後) 배ㆍ보상 특별법 논의’ 수순을 밟자는 입장이다. 한 피해자 단체 관계자는 “배ㆍ보상 조항을 고집하다 통합당 반대에 18, 19대 국회에 이어 또 개정안 처리가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 ‘개문발차’ 외엔 선택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모(母)법 성격인 이번 개정안에 정부의 배ㆍ보상 책임을 규정하지 못하면서 향후 특별법 제정도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향후 통합당 쪽에서 “기본법에 배ㆍ보상 근거가 없다”고 다시 어깃장을 놓을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제주 4ㆍ3사건 피해자 배ㆍ보상 문제를 규정한 특별법은 통합당과 기획재정부 반대로 20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될 운명이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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