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유럽에서 횡행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5G 네트워크 때문”이라는 음모론이 미국에도 상륙한 것으로 보고 폭력사태 확산에 대비하고 있다. 일각에선 근거 없는 주장을 거리낌 없이 펴는 트럼프 대통령이 음모론적 사고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6일(현지시간) ABC방송에 따르면 미국 국토안보부는 최근 정보보고서에서 “코로나19 확산을 5G 네트워크 확장과 연관시키는 음모론이 전 세계적으로 통신시설에 대한 공격을 조장하고 있다”면서 “미국 일부 주(州)에서 이미 무선기지국에 대한 방화와 파괴 공격이 촉발됐다”고 경고했다. 이와 함께 국토안보부, 연방수사국(FBI), 국립대테러센터는 14일 이 같은 내용의 합동 정보 공지를 발부해 연방정부 관리들에게 배포했다.
‘5G 음모론’은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오랜 논쟁에 기반해 5G가 인체 면역체계를 약화시켜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쉬운 상태로 만든다는 주장으로 극우 음모론자들을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급속도로 확산됐다. 이 같은 음모론이 실제 폭력사태로 비화해 영국에서는 무선기지국을 불태우는 방화 사건이 잇따랐고, 네덜란드ㆍ호주ㆍ뉴질랜드 등에서도 유사 사건이 벌어졌다.
국토안보부 보고서는 미국에서도 무선기지국에 대한 정체 불명의 방화 사건이 잇따르자 이를 5G 음모론자들의 소행으로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 들어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최소 다섯 건의 무선기지국 방화사건이 벌어졌고, 지난달 오레곤주 포털랜드에서도 기지국 방화 사건이 벌어졌다. 음모론 확산의 배경에 대해 앨러 컬러티 더블린대 연구원은 ABC에 “음모론은 코로나19 확산의 이유에 대해 단순하고 극적인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다”면서 “복잡하고 우연적인 사건들을 단순한 내러티브로 대체해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와 맞물려 음모론적 주장을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해온 트럼프 대통령으로 인해 미국이 음모론에 취약해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음모론자들의 단골 메뉴인 ‘그림자 정부(Deep state)론’을 이용해 지지 기반을 공고히 해왔다. ‘세계를 움직이는 비밀 권력집단’이 자신을 공격한다는 허황된 주장은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한연구소에서 유출됐다”는 등 입증되지 않은 주장으로 연결됐고, 최근엔 “러시아 스캔들 수사의 배후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있다”는 명백한 정치적 주장으로 이어졌다.
미 시사지 애틀랜틱은 “트럼프 대통령이 음모론적 사고의 파괴적 영향으로부터 미국의 민주주의를 보호하고 있지 않다”면서 “음모론적 사고가 미국 대통령에 의해 뒷받침되면서 본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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