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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성장이야”… 탈성장 요구 국제 공조 ‘꿈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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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성장이야”… 탈성장 요구 국제 공조 ‘꿈틀’

입력
2020.05.15 21:30
수정
2020.05.16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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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재생 에너지 시장에 유인하는 식의 ‘녹색 성장’은 코로나19 위기 이후 대응 전략이 될 수 없다는 게 ‘탈성장 국제 네트워크’ 측 생각이다. 2012년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녹색 성장 서밋 개회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기업을 재생 에너지 시장에 유인하는 식의 ‘녹색 성장’은 코로나19 위기 이후 대응 전략이 될 수 없다는 게 ‘탈성장 국제 네트워크’ 측 생각이다. 2012년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녹색 성장 서밋 개회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바보야, 문제는 성장이야.”

탈(脫)성장 요구를 위한 국제 공조가 꿈틀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가 기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게 소장파 위주 운동 진영의 인식이다.

15일 탈성장 연구자ㆍ활동가 국제 네트워크에 따르면, 이달 29일부터 내달 1일까지 나흘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토론’ 형식의 국제 회의 ‘탈성장 비엔나 2020: 사회 생태적 전환을 위한 전략’이 개최된다. 여전히 ‘코로나 상황’인 만큼 행사는 온라인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감염병 대유행으로 촉발된 위기는 우리의 ‘성장 의존성’과 연결돼 있다”는 게 주최 측의 문제 의식이다. “‘탈성장 사회’에서는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유행이 덜 일어날 것이고, 일어나도 덜 확산될 것이며, 고통도 덜 유발될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하는데 조건은 재(再)지역화다. 지역 주민의 수요를 가급적 해당 지역의 생산물로 충당하도록 경제 활동을 지역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더불어 적절한 탈성장 정책들이 실행될 경우 경제의 많은 부분이 수개월 동안 중단된다 해도 모든 이들에게 충분한 식량과 주거, 보건 의료를 제공하는 게 가능하다.

신호탄은 공개 서한이다. 이들은 13일 발표한 서한에서 “지속 가능하고 평등하게 경제 규모를 줄이는 탈성장을 통해 세계가 덜 갖고도 더 잘살 수 있는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며 5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경제 체제 중심에 생명을 위치시켜야 한다는 게 첫 번째 원칙이다. “화석연료 생산, 군수ㆍ광고 등은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보건 의료와 교육, 재생 가능 에너지, 생태 농업 등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노동의 재평가다. “돌봄노동 등 코로나 위기 동안 필수적인 것으로 입증된 직종들에 적절한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핵심 재화와 서비스 제공을 중심으로 사회를 조직할 필요도 있다. 세 번째 원칙이다. “식량ㆍ주택ㆍ교육 같은 인간의 기본적 필요는 보편적 기본 서비스나 보편적 기본 소득 등을 통해 모두에게 보장돼야 한다”고 이들은 조언했다.

넷째는 사회의 민주화다. 모두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ㆍ경제 체제를 연대의 원칙을 토대로 구축해야 한다는 게 마지막 원칙이다.

적당한 타협은 더 이상 대안이 아니다. 이들은 “인간과 자연의 착취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세계 경제는 어느 때보다 많이 생산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예방 가능한 원인으로 사망하는 매년 수백만명의 어린이들과 극심한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 황폐화”라며 “수십년간 대응 전략으로 채택됐던 탈동조화(탄소 배출을 줄이면서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나 ‘녹색 성장’은 생태 파괴를 완화하는 데 효과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유일한 선택지는 근본적으로 다른 유형의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처럼 기업을 구제하는 대신 사람과 지구를 구해야 하고, 긴축이 아닌 자족에 기반한 대응을 통해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들은 당부했다.

서한에는 한국 등 60여개국 전문가 1,170여명, 단체 70여곳이 서명했는데, 국내에 번역 소개된 ‘탈성장 개념어 사전’의 편집자 페데리코 데마리아와 히오르고스 칼리스, ‘성장’과 ‘발전’의 주류 인식에 문제를 제기해 온 진보적 생태경제학자 조안 마르티네즈-알리에 등도 동참했다.

서명뿐 아니라 서한의 한국어 번역 과정에 참여한 김상현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는 “코로나19 위기 대응과 그 이후의 미래를 위한 사회ㆍ생태적 전환의 경로로서 탈성장을 요구하려는 게 공개 서한의 취지”라며 “정치ㆍ경제 체제의 구조적 전환을 추구하지 않고 이런 저런 시장 기반 정책 도구들과 기술적 해법들을 활용하는 수준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구체적인 정치적 행동이 계획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주요 탈성장론 학자들의 언론 기고가 이어지지 않을까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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