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영화제는 베니스영화제다. 1932년 시작됐다. 파시스트가 창설을 주도한 영화제는 곧 정치에 의해 변질됐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영화제 시상에 노골적으로 간여했다. 1938년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독일 선전 영화 ‘올림피아’에 상을 주자, 미국과 영국, 프랑스 영화인들은 분노를 터트렸다. 프랑스는 곧바로 베니스에 대항할 칸영화제 창설에 나섰다. 1939년 9월 1일 개막 일에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칸영화제는 1946년으로 첫 개최를 미뤄야만 했다.
□전후 칸영화제는 전쟁으로 파괴된 프랑스 영화산업을 살릴 요긴한 행사로 인식됐다.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리라는 기대가 작용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해변 휴양 도시 칸에 몰리면서 영화제는 히트 상품이 됐다. 스위스 로카르노와 영국 에든버러 등 유럽 곳곳에서 영화제가 생겨났다. 분단 시절 서독은 미국의 후원으로 체제 선전을 위해 베를린영화제를 만들기도 했다. 공산 진영도 가만 있지 않았다. 옛 소련의 모스크바영화제와 체코의 카를로비바리영화제를 내세워 자유 진영에 맞섰다.
□냉전 체제 붕괴 후 영화제는 도시 마케팅을 위한 도구로 더 각광받고 있다. 한국이 대표적이다. 1996년 부산영화제를 시작으로 1997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 2000년 전주영화제 등이 잇달아 만들어졌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출 재개와 무관치 않다. 부산영화제가 성공하면서 영화제는 지자체장들이 지역 경제 살리기용으로 들고나오는 단골 메뉴가 됐다. 영화제 기간 중 유명 배우가 방문하면 지역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질 테고, 관광객도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작용했다. 적어도 지역 주민에게 축제를 제공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로카르노 등 해외 영화제들이 속속 취소되고 있다. 칸영화제는 선정작만 발표해 라이벌 베니스영화제와 토론토영화제 등에서 상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역 경제 타격이 불가피하다. 칸영화제의 경제 효과는 연간 2억달러(약 2,400억원)로 추정된다. 한국에선 온라인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28일 개막하는 전주영화제는 무관객에 행사를 최소화하기로 했고, 일부 영화를 온라인으로 상영한다. 서울환경영화제도 온라인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고육책이지만, 축제라는 수식이 무색하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기묘한 모습 중 하나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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