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4000명 사병들 진실규명 열쇠… 처벌보다 화해 통한 ‘회복적 정의’ 초점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 광주에 투입된 병력은 25개 대대 2만53명입니다. 이중 4,700명의 장교들, 특히 명단이 공개되지 않은 1만4,000명의 사병들이 진실 규명의 열쇠입니다. 병사들의 날짜별, 지역별 작전을 재구성해 한 조각씩 맞춰 나가면 누가 어떤 명령을 언제 하달했는지 밝힐 수 있을 겁니다.”
지난 12일 오후 공식 조사개시 선언을 앞두고 서울 저동 국가인권위원회 내 5ㆍ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 사무실에서 만난 송선태 조사위 위원장은 결의에 차 있었다. 과거 9차례 조사와 달리 ‘상향식’ 조사로 40년간 국민적 요구였던 ‘그날의 비극’의 포괄적 진실을 밝히겠다는 각오였다. 송 위원장은 “조사위 출범 후 4개월간 직원들이 주말도 반납하고 밤샘 토론을 하며 조사의 밑그림을 완성했다”라며 “이제 외압이나 편견에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조사위는 지난 11일 현판식을 갖고 이튿날 본격적인 진상 규명에 착수했다. 5ㆍ18진상규명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조사위는 최대 3년간 헬기사격을 비롯한 계엄군 발포, 민간인 집단학살, 북한군 개입설, 여성 성폭행 등에 대한 전방위적 조사를 벌인다.
발포 명령자 특정도 핵심 과제다. 이를 위해선 당시 계엄군 장교와 병사들의 증언이 필요하다. 송 위원장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화해위원회’처럼 사실에 가깝게 증언하면 실정법을 위반했더라도 재판부에 감형이나 사면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도 5ㆍ18고백증언운동본부를 결성해 조사위를 지원한다. 조사위는 기독교, 천주교, 불교를 비롯한 10대 종단과도 관련 논의를 시작했다.
송 위원장은 “우리는 범죄 사실을 조사ㆍ처벌하는 수사기관이 아니고 포괄적 진실을 조사하는 위원회”라며 처벌보다 화해를 통한 ‘회복적 정의’에 초점을 맞춘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군인들도 가해자로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국방위 조사에서 드러난 바 있다”면서 “이들에게 진실을 밝히고 사회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신군부가 파기하거나 왜곡, 은폐한 자료의 원본 확보도 진상 규명의 관건이다. 작전 명령 지시철, 계엄상황일지 등 60만쪽 분량의 데이터베이스가 있지만 여전히 핵심자료가 부족하다. 송 위원장은 “5월 20일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관련 군 기록이 고의 누락돼 일체 없고, 1996년 11월엔 보안사 소각실에서 광주 관련 주요 자료가 담긴 나무상자 8개가 소실돼 문서 목록만 남아있는 상태”라며 “이 부분도 철저하게 진상을 가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 위원장은 최근 미 국무부가 전달한 광주 관련 자료에 대한 기대감도 내비쳤다. 1996년 공개된 일명 ‘체로키 파일(미 국무성과 신군부 사이에 오간 비밀 통신기록)’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송 위원장은 “정보공개청구를 요청한 82건 중 42건이 먼저 도착했는데, 과거와 달리 지워진 부분이 없는 원본”이라며 “분류 및 해제 작업 중이고 추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조사 개시와 함께 40년 넘게 유족들이 애태운 희생자 암매장지 발굴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송 위원장은 “지난해 6월 통합신고센터 개설 이후 이달 7일까지 총 48건의 새로운 암매장 관련 제보를 받았다”라며 “과거 70여 건의 제보와 중복 여부를 대조해 추가 발굴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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