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인도차이나 반도가 최악의 가뭄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장기 가뭄은 메콩강 수위 저하와 염분 침투 현상까지 초래해 농심(農心)을 멍들게 하고 있다. 극악의 자연재해를 이겨낼 구조적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는 한, 생계를 위해 대도시로 탈출하는 이농 행렬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15일 VN익스프레스와 방콕포스트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역대급 가뭄이 4개월 넘게 지속되면서 메콩강을 생활 터전으로 삼는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의 농업 피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메콩강 하류에 위치한 베트남 델타삼각주의 경우 올해만 4만3,000㏊ 규모의 농지가 가뭄으로 경작 불능 상태에 빠졌고, 8만 가구는 식수난에 허덕이고 있다. 심지어 30년 동안 한번도 마르지 않았던 델타 운하마저 최근 바닥을 드러내는 등 베트남의 가뭄 피해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커지는 모양새다.
인접한 태국과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도 어려움을 겪긴 마찬가지다. 세계 2위의 쌀 생산국인 태국은 농업용수 부족 사태가 이어지자 최근 421개의 물 창고를 서둘러 지었다. 태국 정부는 가뭄이 계속될 경우 인공 강우 작업도 병행할 계획이다. 라오스도 물 부족으로 전체 모내기 계획량의 40%밖에 진행하지 못했으며, 캄보디아와 미얀마 역시 추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농경지가 비가 오지 않아 말라가고 있다. 라오스 농업국 관계자는 “몇 주 안에 비가 오지 않으면 메콩 지역의 대다수 농작물이 죽을 것”이라며 “최악의 경우 쌀 부족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 각국 정부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베트남 벤째 지역 등 6개 지방정부는 긴급 사태를 선포하고 비상 대응에 돌입했지만, 저수지 물마저 가뭄으로 인한 염분 침투 탓에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망연자실한 모습이 역력하다. 이에 중앙정부가 이들 지역에 긴급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으나 경작 실패로 이미 막대한 빚을 진 농부들은 미련 없이 고향을 떠나고 있다.
실제로 ‘베트남 인구 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베트남 내 이주율 1위 지역은 델타삼각지로 최근까지 약 72만명이 농사를 포기하고 대도시로 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델타삼각지 관계자는 “가뭄이 심해진 이후 동네에 빈집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며 “이탈자 수가 올해 역대 최고를 찍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가 재정상황이 나쁜 미얀마와 라오스는 해외에 손을 벌려 가뭄 피해를 복구해야 할 처지다. 미얀마는 가뭄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세계은행으로부터 2억달러의 차관을 들여오기로 결정했으며, 라오스 정부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원조를 받을 예정이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