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접하는 교육학 개론서의 첫 장은 ‘교육’의 뜻풀이를 담고 있다. 한자어 ‘교육’은 살짝 때려 아이가 본받도록 한다는 뜻의 교(敎)와 기른다는 뜻의 육(育)을 결합한 것이며, 영어 ‘에듀케이션(education)’은 라틴어 ‘밖으로 이끌다’를 어원으로 보고 잠재력을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라 설명한다.
한편 오랫동안 말을 통해 전승된 우리 고유어 ‘가르치다’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직 여러 가지 설명이 골고루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가르치다’를 ‘ᄀᆞᆯ다(연마하다)+치다(보살펴 키우다)’로 보는 것이다. ‘가르치다’의 유래에 대한 여러 설명 중의 하나일 뿐인 이 관점이 교육학적인 면에서 흥미로운 이유는 한자어 ‘교육’과 그 뜻이 상응하면서도 오늘날 추구하는 교육의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갈다’는 지식과 기능 전수를, ‘치다’는 사랑을 담고 있다.
‘가르치다’의 옛말인 ‘ᄀᆞᄅᆞ치다’는 ‘가르치다[敎]’와 ‘가리키다[指]’를 뜻하는 다의어였다가 17세기 이후에서야 분화되었다. 이렇게 엮여 있던 역사가 오래여서인지는 몰라도 ‘가르치다’와 ‘가리키다’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고, 심지어 둘을 섞어 ‘가르키다’로 잘못 쓰기도 한다.
코로나 19는 ‘원격 학교 수업’이라는 새 일상(←뉴노멀)을 열었다. 원격 수업의 학습 효과가 처음 우려했던 것만큼 나쁘지 않다는 평도 있지만, 아직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교육은 ‘가르치다’와 ‘가리키다’를 제대로 구분하는 것뿐 아니라, 선생님의 보살핌 안에서 ‘가르침’의 가치와 의미를 느끼며 얻는 성장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떠들썩함이 사라진 스승의 날 풍경이 더욱 허전한 것은 원격 수업으로 인해 지식의 전수만 남고 보살핌의 장소가 사라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강미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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