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는 사회적 합의보다 차별금지법이 먼저다 … 반세기 전에 내려진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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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는 사회적 합의보다 차별금지법이 먼저다 … 반세기 전에 내려진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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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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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성소수자 축제인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생각해 보면 차별은 거의 언제나 그렇다. 차별은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중략) 차별은 분명 양쪽의 불균형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모두에게 부정의 함에도, 희한하게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만의 일처럼 이야기된다.”

김지혜 교수는 지난해 출간된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에서 평소 무심코 써 왔던 ‘결정장애’란 말이 장애인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지적받고, 뒤늦게 반성했던 일을 고백한다. 책은 나도 모르게 저질러지는 일상 속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다.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만든 책이지만 그 안에도 차별은 곳곳에 스며 있었다. 출판사는 개정안을 내며 저자 소개에서 출신 학교 정보를 빼고 조금이라도 차별적으로 느껴지는 언어 표현도 순화했다. “차별주의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선량한 다짐만으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현실은 더하다. 이태원 클럽 일대에서 퍼진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 철저하게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은 잘못을 지적하는 것과 별개로, 그들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제거돼야 할 존재로 낙인찍고 희생양 삼는 건 또 다른 범죄다.

인류 역사상 소수 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늘 있어왔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미국의 흑인, 일제강점기의 재일 조선인, 그리고 난민,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탈북민 등 우리가 무시하고 배척해온 ‘그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결국 타자에 대한 적개심, 편견은 타고난 인간의 본성인가. 차별과 혐오의 역사를 멈추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나.

‘편견’ 저자 고든 올포트. 교양인 제공

차별과 혐오의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풀어낸 고든 올포트의 ‘편견’은 이 모든 질문에 응답하는 책이다. 1954년 첫 출간 이후 편견 연구의 토대를 놓은 고전으로 평가 받아왔다. 책은 총 8장으로 이뤄졌는데, 전반부는 편견의 기원을 밝히는 심리학적 분석이 주다. 편견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빠르게 습득될 뿐. 인간이 편견에 사로잡히는 건 ‘편해서’다. 나와 다르고, 낯선 존재에 대해 인간은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모든 사회 단위는 ‘공동의 적’을 두는 데서 안정을 느낀다.” ‘그들’이 우리를 위협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결속력을 키우고 내부 충성심을 강화하기 위해 배제는 시작된다.

편견을 조장하고 부추기는 사회의 조건을 분석한 대목은 흥미롭다. 저자는 수직적 계층 이동 기회가 높은 사회일수록 편견이 강화된다고 봤는데, 하층계급이 상층으로 올라오는 걸 ‘위협’으로 간주하고 일종의 방어기제로 적극적 차별에 나서기 때문이다. 이는 약자와 약자가 맞붙을수록 더 심해진다. 흑인과 일자리를 경쟁해야 하는 하층 계급 백인들이 인종차별에 더 열을 올리는 건 자신의 존재가 위태로워서다.

비슷한 맥락에서 소수 집단이 어느 정도의 규모를 이루고, 집단적으로 몰려 있을 때 더 공격 받는 사실도 드러났다. 중국 동포들이 많이 밀집해 살고 있는 서울 대림동이나 탈북민들의 집단 거주지가 차별과 혐오의 타깃이 되는 배경이다. 저자는 차별주의자들의 증오와 적개심을 자양분 삼아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정치인들을 향해선 “본질적으로 공동체의 이익을 저해하는 착취자”라고 일갈한다.

2018년 국제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5월 17일)에 멕시코시티 알라메다 공원에서 한 동성커플이 성소수자 권익 옹호 시위의 일환으로 장시간 입맞춤을 나누는 이벤트를 하며 셀카를 찍고 있다. 멕시코시티=AP 연합뉴스

그럼에도 맞설 무기는 있다. 법이다. 정규교육과 대중매체, 접촉면 늘리기, 개인 심리 치료 등 여러 방안을 내놨지만 그 중에서도 입법을 통한 교정 방안이 가장 효과적이라 저자는 단언한다. 반대자들은 실효성을 의심한다. ‘소수자에게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는 법을 강제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마음까지 지배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대중의 반발을 불러 역효과를 낼 것이다’ 등등.

하지만 저자의 반박은 명쾌하다. “대중은 미리 전향자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정사실이 그들을 바꾼다.” 법이 바뀌어야 인식도 바뀐다는 것. 교육도 법이 만들어진 뒤에 나서야 더 효과적이다. 또 법은 차별의 악순환의 고리를 깨뜨릴 수도 있다. 흑인에 대한 교육, 고용, 주거 등 생활수준을 높이자, 백인의 편견이 줄어들었다는 통계도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나라에서 인간의 태생적, 후천적 특성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건, 그만큼 법의 교정 효과를 믿어서다. 적어도 ‘이 선만큼은 넘어서는 안 된다’라는 가이드라인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은 달라질 수 있다. 저자는 강조한다. “외적 행위는 내면의 사고 습관과 감정에 궁극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입법 조치는 공적인 차별만이 아니라 사적인 편견까지 감소시키는 주된 수단 중 하나다.”


 편견 

 고든 올포트 지음ㆍ석기용 옮김 

 교양인 발행ㆍ840쪽ㆍ3만6,000원 

한국은 어떤가. 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발의된 지 10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보수 기독교인들의 ‘편견’ 때문이다. 정부는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며 몸을 사린다. 그 모호한 태도에 차별주의자들은 갈수록 기세등등하고 있다. 이쯤 되면 편견과 차별, 혐오에 대한 면죄부다.

반세기 전에 나온 책은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한지, 그 본질에 대해 한마디로 일갈한다. “당신의 태도와 편견은 오직 당신만의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동료 시민의 생명이나 생활이나 마음의 평화를 위태롭게 할 정도로 실행에 옮겨서는 안 된다.” 편견과 차별로 먹고 사는 극단적 차별주의자들,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선량한 마음에만 기대 나는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착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각성제가 돼 줄 책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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