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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걸친 라이벌 삼성ㆍ현대, 긴장 관계 깨고 ‘훈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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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걸친 라이벌 삼성ㆍ현대, 긴장 관계 깨고 ‘훈풍’

입력
2020.05.14 04:30
수정
2020.05.14 08:5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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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철학 달랐던 창업주, 서로의 영역 뛰어든 2세대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2019년 1월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재계 신년인사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2019년 1월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재계 신년인사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삼성가와 현대가.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두 재벌가가 경쟁과 긴장 관계를 넘어 본격적으로 손을 잡을까.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13일 단독 회동을 했다. 두 사람의 개인적인 친분은 꽤 두터운 것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공식적인 만남은 처음이다. 이 회동이 주목 받는 건 3세대를 거치는 동안 삼성과 현대 두 재벌은 공생·협력보다 경쟁·견제의 역사를 이어 왔기 때문이다.

◇각자의 길 걸은 1세대

1981년 8월 22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 회장과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서울 중구 삼성본관 집무실에서 만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1년 8월 22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 회장과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서울 중구 삼성본관 집무실에서 만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삼성과 현대는 해방 이후 재계 서열 1, 2위를 다투며 경쟁해온 오랜 라이벌이다. 두 기업의 창업주는 경영철학부터 달랐다.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은 신중하고 치밀한 경영으로, 정주영 전 명예회장은 과감하고 뚝심있는 경영으로 각자의 그룹을 키웠다.

그런 두 사람은 핵심으로 삼은 사업 분야도 달랐다. 이 전 회장은 일찌감치 전자산업과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특히 1983년 2월 ‘도쿄 선언’으로 반도체 산업에 발을 들였다. 반면 정 전 회장은 중동 오일쇼크로 전 세계 경제가 패닉 상태에 빠졌던 1975년 중동 건설 현장을 누비며 현대그룹의 기초를 다졌다. 정 전 회장의 일화를 책으로 다룬 박정웅 메이텍 대표는 2015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 번은 사석에서 이 회장 이야기가 나오지 정 회장이 ‘자기는 부잣집 아들로 자라 유학도 가 보고, 국보급 골동품으로 가득한 서재에서 고려자기를 쓰다듬으며 정원에 노는 공작새를 감상하는 고상한 양반이고, 나는 막노동자 출신이라 무식한 사람이라 이거지’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의 왕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5년 정 전 회장의 고희를 축하하는 전경련 행사장에 예고 없이 이 전 회장이 부축을 받으며 등장했다. 지병으로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이 전 회장은 정 전 회장에게 백자를 선물했다고 알려졌다.

◇자동차와 반도체, 서로의 영역을 탐낸 2세대

2007년 9월 1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성과보고회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게 다가서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7년 9월 1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성과보고회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게 다가서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선대 때보다 치열한 경쟁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이 회장의 각별한 ‘자동차 사랑’이 긴장 관계를 불렀다. 이 회장은 취임 초인 1987년 비서실에 승용차 사업 진출 방안을 수립하도록 지시하면서 자동차 산업 진출을 타진해 왔다. 정 회장이 1996년 현대차그룹을 물려 받으면서 경쟁 구도가 본격화했다.

현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1998년 당시 김대중 정부가 대기업들의 과도한 중복 투자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추진된 ‘빅딜’ 결과 현대는 기아차와 LG반도체, 한화에너지를 싹쓸이했다. 하지만 LG반도체와 합병한 현대전자는 인수자금 부담과 D램 가격 하락 등 악재에 버티지 못했다. 삼성도 부실한 자동차사업 정리게 큰 진통을 겪었다. 이 회장은 사재까지 출연해야 했다. 결국 삼성과 현대가 각각 주력 분야를 지키는 대신 자동차, 반도체 등 상대의 핵심 분야에 진출하려던 계획을 접으면서 자연스레 긴장 구도는 완화했다.

2001년에는 이 회장이 본인과 삼성 계열사 사장단의 공식 업무용 차량 100대를 현대차 에쿠스로 교체하면서 관계 회복이 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나오기도 했다. 같은 해 정주영 전 회장이 별세한 뒤 장례를 도와준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정 회장이 이 회장과 단독 회동을 했다.

◇협력 본격 모색하는 3세대

창업주와 아버지 세대를 거쳐 3세대에서는 비록 범삼성ㆍ범현대 간 협업이긴 해도 의기투합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서울시내 면세점 신규 사업권을 위해서는 이건희 회장의 큰 딸 이부진 사장이 이끄는 호텔신라와 정주영 창업주의 넷째 동생 정세영 현대차 초대 사장의 장남 정몽규 회장이 이끄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손을 잡았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하남에 현대차 제네시스 브랜드의 첫 단독 전시 체험관을 입점시킨 것이다.

재계에선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의 이번 공식 만남으로 두 그룹의 본격적인 협력이 이뤄질 가능성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자료조사 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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