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에 대한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이 13일 풀리기 시작했다. 지난 11일(출생 연도 끝자리 1, 6) 지원금을 신청한 약 172만 가구가 이날 받았다. 지급대상 1,700만가구 중 앞서 받은 취약계층(280만 가구)을 제외하면 12%의 세대주가 신청한 셈이다. 지원금 신청 5부제를 감안해도 높은 수치는 아니다. 16일부터 출생연도와 무관하게 신청할 수 있고, 지원금이 신청 이틀 뒤 비교적 신속하게 지급되는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같은 땅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들 중엔 사정이 딱하고 급해도 지원금을 신청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 삶의 터전을 한국으로 옮겨와 일하면서 소비하고 세금을 내는 이주민들이다. 이변이 없는 한 이들은 앞으로도 신청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인’이 아닌 탓이다.
이 같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방침이 공개되자 각 이주민 단체는 반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생계 위협을 받는 것은 자신들도 예외가 아니고, 오히려 타격은 더 큰데도 불구하고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이런 반발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 초 경기도가 이주민을 재난기본소득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슷한 내용으로 인권위에 진정이 들어갔고,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올라가 있다.
그들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는 것은 외국인을 지원할 법적 근거가 없는 데에 기인한다. 서울시는 긴급생활지원비를 지원하면서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한국에 사는 외국인 중에서도 한국인을 배우자로 둔 외국인, 한국인 배우자와 이혼 또는 사별한 뒤 한국 국적의 자녀와 함께 거주하는 외국인으로 그 대상을 제한했다. 다른 지자체도, 정부도 이유는 비슷하다. 이주민들은 이게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에 살면서 근로를 제공하고 납세 등 법률적 의무도 다하고 있는 만큼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재난지원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게 이들 목소리다.
‘세금 얼마 낸다고 그런 요구를 하느냐.’ 당장 이런 반박이 쏟아진다. 또 그들에겐 국방의무가 없고, 남의 나라에 돈 벌러 와서 잠시 있는 동안 의료혜택까지 받으면서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요구사항이 점점 많아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지적들은 이렇게 결론이 난다. ‘그런 게 불만이면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생각해보자. 과연 이들 없이 우리 사회는 굴러갈 수 있나. 한국에서 코로나19가 무섭게 퍼지던 지난 2월 말 외국인 근로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후 비행기가 끊기고 입국검역이 깐깐해지면서 그들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를 통한 외국인 근로자 입국도 급감했다. 이들 덕에 버티던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비명소리가 났다. 공단들이 타격을 입었고, 농촌의 인건비는 배로 뛰었다. 공무원들은 들판으로 불려갔다. 그들이 없어도 우리 사회가 멈추진 않겠지만 적잖은 문제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경기 안산 등 일부 지자체가 외국인들에게도 7만원씩 풀고 나선 것은 그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재난지원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는 곳곳의 예산을 삭감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ㆍ코이카)도 예외는 아니었다. 올해 9,400억원의 예산 중 7% 가까운 금액이 깎였다. 코이카는 대외무상 원조사업을 통해 ‘한국의 우군’ 확보 업무도 보는 기관이다. ‘물 한 모금’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다는 이치를 감안하면 아쉬운 결정이지만, 이보다 더 아쉬운 게 이주민을 배제한 재난지원금이다. 언젠가 본국으로 돌아가면 그 누구보다도 한국을 노래할 사람들이다. 또 그들 나라에서 한국인과 중국ㆍ일본인 사이 싸움이 나도 한국 편을 들어줄 사람들이 바로 지금 우리 옆에 있는 이주민들이다. 세계의 마음을 얻기 위해 밖으로 돈을 쓰는 것도 필요하지만, 등잔 밑을 보지 못하고 있는 듯한 현실이 안타깝다.
/ 정민승 지역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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