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고사 위기에 처한 항공업계의 ‘맏형’ 대한항공이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실탄 확보에 나섰다. 대한항공이 지난달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금융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시행하는 1조5,000억원 규모 자구안의 일환이다. 이로써 대한항공은 일단 1조2,000억원의 정부 차입금과 1조원의 유상증자로 2조2,000억원을 확보하게 됐다.
13일 대한항공은 이사회를 열고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정부 자금 지원안의 실행을 의결했다고 공시했다. 이번 유상증자는 주주 우선 배정 후 실권주를 일반 공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유상증자로 새로 발행되는 주식 수는 보통주 7,936만5,079주이며, 주당 예상 발행가격은 1만2,600원이다.
또 국책은행으로부터 지원받는 1조2,000억원 규모의 차입금은 항공화물 매출채권을 담보로 하는 7,00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과 주식전환권이 있는 3,000억원 규모의 영구채, 2,000억원의 자산담보부 차입으로 진행키로 했다.
대한항공의 이번 유상증자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다. 12일 현재 대한항공의 보통주 기준 시가총액이 1조7,357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는 시가총액의 무려 57.6%에 달한다.
대한항공은 지난 2015년과 2017년에도 각각 5,000억원과 4,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한 바 있다. 하지만 회사의 유동성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5년엔 파산한 한진해운 자금 지원 목적으로, 2017년엔 자회사인 한진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윌셔그랜드호텔의 재개발을 위해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다만 대한항공이 유동성 확보 방안으로 유상증자를 선택함에 따라 최대주주인 한진칼이 안정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려면 현재 지분율을 유지해야 한다. 결국 유상증자에 참여할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인데, 항공수요 위축과 경영권 분쟁이 겹친 한진칼이 어떻게 자금을 마련할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한진칼은 대한항공 지분의 29.96%를 보유하고 있다. 현 지분율을 유지하려면 한진칼이 마련해야 할 자금은 1조원의 약 30%인 3,000억원 수준이다. 지난해 말 기준 대한항공의 5%이상 주주는 한진칼을 제외하면 국민연금공단(11.5%)이 유일하지만, 이번 유상증자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증자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자칫 경영권 분쟁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업계에선 한진칼의 100% 자회사인 정석기업과 칼호텔네트워크 등의 지분을 매각하거나 주식ㆍ부동산 담보 대출을 통해 자금을 확보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이 외부 투자자를 유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진칼은 14일 이사회를 열어 대한항공 유상증자 참여 방안을 의결할 계획이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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