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K리그의 2020시즌이 출발했다. 예정보다 두 달 늦었지만 전북과 수원의 개막전은 해외 36개국에서 생중계될 만큼 관심을 끌었다. 유럽 5대 리그 중 하나인 프랑스가 아예 이번 시즌을 접는 등 유럽 축구의 재개 여건이 썩 좋지 않은 외부 요인의 영향도 크다.
이 가운데 시즌 재개에 ‘그린 라이트’가 켜진 건 독일 분데스리가 정도다. 오는 16일 리그를 재개하기로 했다. 무관중 및 경기당 허용 인원 300명(선수단ㆍ관계자ㆍ취재진) 조건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여전히 불안하다. 리그 재개에 앞서 실시한 선수단 전수 검사에서 쾰른, 묀헨글라트바흐, 드레스덴(2부)에서 11명의 선수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드레스덴은 선수단 전체가 2주 격리에 들어가 기껏 잡은 리그 재개 초반부 일정을 지키지 못하게 생겼다. 한국 기준으로는 재개를 미뤄야 할 것 같지만, 크리스티안 사이퍼트 분데스리가 사장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시즌 전체를 멈출 만한 사안은 아니다”라며 꿋꿋하다.
아슬아슬한 분데스리가의 결정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우선 정부의 민심 달래기다. 지금 독일 내에선 일상 복귀를 요구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대대적 완화가 어려운 현실 속에서 분데스리가 재개는 국민적 울화를 식힐 필승 카드다. ‘축구광’ 앙겔라 메르켈 총리이기에 축구의 사회적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을 것이다. 두 번째는 돈이다. 이대로 올 시즌을 종료할 경우, 예상 손실액이 7억5,000만유로(9,932억원)로 추산된다. 지금까지 선수단 급여 삭감으로 버텼지만, 리그 종료가 초래할 손실액은 감당해낼 수가 없다. 당장 올 여름 전에 파산 구단이 속출한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프랑스 정부는 리그앙을 강제 종료하는 대신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 반면 독일 정부는 ‘평소 선수들에게 고액 연봉을 지급할 만큼 돈이 있으니 구단들이 자생하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리그로서는 코로나19 감염 위험과 재정 파탄 중 한쪽을 감수해야 한다. 결론은 뻔하다.
리그 재개 목표 시점이 두 번째로 빠른 곳은 스페인이다. 하비에르 테바스 라리가 회장은 “6월 12일 재개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스페인 정부가 ‘뉴노멀 전환 4단계’ 중 첫 번째인 ‘0단계’를 선포한 덕분에 각 구단은 팀 훈련을 시작했다. 역시나 라리가의 코로나19 전수 검사에서도 선수 5인, 스태프 3인의 확진자가 나왔다. 확산세가 꺾였다고 해도 스페인에서는 11일 하루에만 143명이 목숨을 잃었을 정도로 코로나19가 현재진행형이다. 그나마 이탈리아는 현실에 순응하는 눈치다. 현재 선수들의 개인 훈련만 허용하며 이달 18일부터 팀 훈련을 허가할 방침이다. 축구계에서는 6월 중 리그 재개를 희망하지만 정부는 굳은 표정을 풀지 않는다. 최근 빈첸초 스파다포라 체육부 장관은 “세리에A 재개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시즌 종료 결정이 유럽 전체의 표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설상가상 하위권 팀들이 강등을 피하고자 시즌 취소를 주장하고 있어 리그 재개 시계가 흐려지고 있다.
축구종가 잉글랜드는 혼돈의 최전선에 있다. 11일 영국 정부는 ‘6월 1일 전까지는 문화, 체육 관련 행사의 무관중 개최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부터 리그와 구단 대표자들은 리그 재개를 위한 협의를 재개했다. 20개 구단마다 처한 사정이 달라서 합의점 찾기가 쉽지 않다. 리그 측이 유일한 방법이라며 제시한 중립 경기장 방안은 홈 이점 상실을 우려한 하위 팀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구단들도 마냥 고집만 피울 수 없다. 시즌 취소 시 손실액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EPL 리차드 마스터스 사장은 “올 시즌 종료 시 손해가 1억파운드(1조5,118억원)다. 재개해도 TV 중계권료 중 3억4,000만파운드(5,140억원)를 환불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일부 구단은 현금 보너스를 미끼로 선수들에게 리그 재개 찬성을 종용한 정황이 드러나 도덕적 해이 비판이 일고 있다. 유럽 축구의 우왕좌왕 처지와 K리그의 개막 성공이 보이는 대비도 코로나19가 만든 ‘뉴노멀’ 중 하나다.
홍재민 전 <포포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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