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를 잡지 못하고 있는 필리핀 정부가 수도 마닐라와 유명 휴양지 세부 등에 대한 봉쇄령을 이달 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3월 중순부터 통행금지 등 강력한 격리정책이 시행된 점을 고려하면 무려 80일 동안 일상생활이 멈추게 된 셈이다. 고립 장기화에 따른 우리 교민들의 불편도 커질 전망이다.
12일 주필리핀 한국 대사관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이날 “이달 15일 시한인 메트로 마닐라와 세부 등 고위험 지역에 내려진 봉쇄령을 월말까지 수정해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전날 필리핀 범정부 태스크포스(TF) 전체 회의에서 도출된 “감염자 3분의2, 사망자의 72%가 나온 마닐라 등 위험 지역에 대한 전면 봉쇄 해제는 위험하다”는 결론을 고심 끝에 수용한 것이다.
다만 필리핀 정부는 출근자를 50% 이하로 제한하는 조건으로 마닐라와 세부의 일부 산업시설 가동을 허용했다. 또 타 지역 이동 및 입국 금지 원칙은 유지하되, 필수 물품 수송을 위한 교통 서비스를 제한적으로 재개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마닐라와 세부 등을 제외한 다른 지역들은 다소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 정부는 다바오시 등 8개 지역은 중위험군, 나머지 지역은 저위험군으로 분류했다. 향후 중위험군은 경제 활동의 75% 수준의 활동이 보장되고, 저위험군은 방역 원칙을 지키는 전제 아래 모든 경제 활동이 가능해진다.
완화된 조치가 나왔지만 필리핀 내 코로나19 공포는 여전하다. 대중 선동을 즐기는 두테르테 대통령마저 “제한을 푸는 것이 코로나19가 더 이상 필리핀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2ㆍ3차 감염 확산을 막을 여유가 없는 우리는 마스크를 반드시 써야 한다”고 강조할 정도다. 실제로 인구 1억명이 넘는 필리핀은 이날까지 코로나19 검사 건수가 15만여건에 불과할 만큼 방역 역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필리핀의 강력한 봉쇄령은 3월 15일 마닐라가 위치한 루손섬에서 시작됐다. 이후 필리핀 전역으로 봉쇄 조치가 확대돼 외국인 입국이 전면 불허됐으며, 통행 금지는 물론 약국 등 필수 시설을 제외한 모든 영업장이 문을 닫았다. 필리핀 정부는 이달 하루 500명 안팎이던 신규 확진자 수가 100명 단위로 줄자 대중교통 운행을 허용하는 등 일부 지방의 봉쇄령을 한 차례 완화했지만, 마닐라 등에 대해선 같은 수준을 유지한 바 있다. 필리핀은 한 동안 100명대에 머물던 신규 확진자가 최근 사흘 사이 다시 300명대로 증가해 누적 확진 환자만 1만1,086명에 달한다.
필리핀에는 현재 한국 교민 8만5,000여명이 거주 중이며 6만여명은 봉쇄령이 유지된 마닐라와 세부 등에서 생활하고 있다. 필리핀 교민들의 고통이 계속되자 한국대사관과 교민회는 전날 전세기를 이용해 교민 및 유학생 183명을 한국으로 귀국시키기도 했다. 대사관 측은 “구체적이고 정확한 필리핀 정부의 지침을 파악하는 대로 교민들에게 신속히 알리겠다”고 밝혔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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