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세상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 말한다. 그중 하나,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우리 모두 깨달은 바가 있다. ‘굳이 만나지 않아도 일이 되는구나!’ 매일 출근하고, 모여서 회의하고, 회식을 하지 않아도 일은 된다. 다소 불편함과 어색함도 있었지만 그 사이를 메워주는 ICT 기술이 충분히 발전했다. 그리하여 코로나19 이후 모든 분야에서 ‘비대면 서비스’가 유행처럼 도입되거나 더욱 강화되고 있다. 공공행정 분야에서도 전자정부를 넘어 지능정부를 지향하며 비대면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시도들이 가속화되고 있다.
비대면 행정이란 쉽게 말해 AI와 온라인을 활용해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이미 주민등록등본을 비롯한 각종 증명서는 민원24 홈페이지에서 발급 받은 지 오래, 동사무소에 간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다. 긴급재난지원금도 인터넷에서 신청할 수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4월 창업지원사업 선정을 위한 평가를 비대면으로 진행하였다. 앞으로도 기술가치와 기업평가, 여러 가지 기업 지원서비스를 위해 AI를 활용하고 온라인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행정안전부는 ‘행정정보공동이용시스템’ 활용을 더욱 확대하기로 했다. 예전에는 행정 서비스를 받기 위해 개인의 자격 요건을 확인하는 증명서를 시민들이 제출했지만 이제는 개인정보 활용동의만 하면 끝나는 것이다. 서울시와 경상남도 등 지방자치단체들도 복지, 문화, 행정 서비스 전반에서 비대면 행정을 확대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비대면 행정이 확대되면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일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다. 실제로 최근 스웨덴 스톡홀름 시정부는 로봇 자동화 시스템이 고유한 사용자 권한을 가지고 다른 업무 시스템에 접속하면서 단순 반복 업무를 하기 시작했다. 바쁜 공무원의 일손을 덜어 주는 차원을 넘어서 시스템이 스스로 권한을 갖고 움직인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비대면 행정이 확산되는 시기에 몇 가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행정의 민주성과 책임성을 고려해야 한다. 행정 정보 시스템의 설계는 단순한 IT시스템 설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행정 서비스는 국민의 권한을 민주적으로 위임받은 정부가 국민의 요구에 대응하여 책임을 지고 제공하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지켜지던 이러한 원칙들이 온라인에서도 구현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보 시스템 디자이너, IT 기술자, 관료의 협업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누가 통제 권한을 갖고 조율하고 책임질 것인가? IT기술자가 관료의 결정권한을 넘어서지는 않을까? 모두 간단치 않은 문제다.
둘째, 시스템 운영의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 시스템이 어떤 알고리즘으로 의사결정을 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무슨 데이터를 사용하는지에 대해 공무원뿐만 아니라 시민도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행정의 형평성도 고민해야 한다. 비대면 행정이 활성화된다면 얼굴 없는 정부가 될 것이다. 취약계층의 삶을 보듬어주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인데 만남과 소통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온라인 서비스를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소외될 우려가 있다. 비대면 행정이 디지털 약자를 소외시키지 않도록 사각지대를 꼼꼼히 챙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비대면 행정 서비스가 가져올 미래 변화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행정의 효율성과 객관성을 제고할 수도 있고, 시스템의 그림자 아래 행정의 민주성과 책임성이 희미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시민을 위한 서비스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새로운 방식, 진정으로 시민을 위한 비대면 행정 서비스가 무엇인지 성찰하는 것이 먼저다.
김은주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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