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남한식 군사 모험주의를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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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남한식 군사 모험주의를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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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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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의 길 철원 구간 철조망에 걸린 백마고지 참전용사 박명호씨의 ‘남북평화통일’. 최흥수 기자

10년 전 모 일간지 논설위원은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그는 전쟁이 발발해도 국민이 3일만 참으면 그 사이 북한 장사정포 70%를 제거할 수 있고, 다른 전략 표적도 파괴해서 결국 승리할 수 있다는 군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전쟁을 결심할 수 있어야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한 그는 북한에 대해 강력한 군사 압박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군사적 압박 때문에 국지전이나 전면전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로 인해 자유민주 통일이 앞당겨지면 그게 나쁜 일인가?”라고 말이다.

한동안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로 세상이 들썩였을 때 이와 유사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급변이 오면 좋겠다. 그러면 명운을 걸고 한판 크게 벌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급변사태가 초래할 군사적 불안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봤을까. 그걸 감안하고도 급변이 오길 원했다면 남한식 군사 모험주의라고 해야 할 지경이다.

급변사태는 편안히 처리될 수 없다. 3일 참는다고 깔끔하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모험주의적 시각을 견지하는 이들은 핵무기의 파괴력이 과장되었다고 주장하는 수정주의적 견해에 쉽게 끌릴 것 같다. 모험주의자들과 수정주의자들이 만나면 폭발적 화학반응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일본에 투하된 원자탄이 어떤 효과를 냈는지에 대한 수정주의자들의 설명은 다소 놀랍다. 이런 식이다. ‘원폭이 파괴한 것은 주로 목조건물들이었다. 인명 피해의 대부분은 화재 때문이었다. 여름이라 얇은 옷을 입고 있어서 방사능 피폭이 심했다. 겨울이었으면 달랐을 것이다. 콘크리트와 철골 구조물은 거의 그대로 남았다. 콘크리트 건물 지하에 있던 사람들은 원폭 지점에서 가까이 있었음에도 살아남았다. 전화, 전기, 수도는 수일 내로 복구되었다.’

물론 기술 발달로 과거보다 매우 강력한 핵무기 생산이 가능해졌다. 그들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실제 전쟁에서 사용될 핵무기는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탄의 파괴력을 크게 넘을 수 없다고 본다. 극악무도한 독재자라도 그보다 더 강력한 핵무기를 쓰는 데는 심리적인 저항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자, 이제 3일의 인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자. 이들의 2020년판 주장은 이럴 것이다. ‘비핵화 교착 상태에서 북한이 핵을 고도화하고 있다. 북한은 평양 인근 신리에 뭔가를 짓고 있고, 신포에서는 SLBM 사출 시험을 했다. 조만간 뭔가 나온다. 북한판 이스칸데르, MLRS는 이미 개발됐다. 가만 놔두면 안 된다.’

그들은 이렇게 처방할 것이다. ‘협상에 매달리지 말고 군사적으로 압박해야 한다.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다 최악의 경우 핵을 한 방 맞을 수 있다. 그렇지만 북한이 실제 쓸 핵은 일본에 투하된 파괴력 정도의 것일 거다. 평소 핵 민방위를 열심히 하면 피해는 극적으로 줄어든다. 국민들이 3일 정도만 참아주면 그 사이 북한의 전략표적을 파괴할 수 있다. 이참에 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듣고 보니 어떤가? 아찔하지 않은가? 남한식 군사 모험주의가 흥미로운 부분은 딱 한 군데다. 보수 진영에 있는 다른 부류와는 달리 ‘결국은 우리가 이긴다’고 한다는 점이다. 북한에 의한 적화 공포를 부추기는 것과 다르다. 그러나 그들은 무모하다. 적화 공포를 부추기는 것보다 더 걱정스럽다.

현재 한반도 군사력 균형 상태를 보건대, 최선책은 군사적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협상하는 것이다. 군사적 압력을 조금씩 빼내야 한다. 정신 차려 보면 발밑은 천 길 낭떠러지다. 지금 상황도 어려운데 더 답 없는 급변사태를 꿈꾸다니. 우리가 첨단 전력을 갖게 되었으니 적화 얘기는 그만하자고 역설했더니 오히려 군사 모험주의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른 것 아닌지 모르겠다.

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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