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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의 시선] 코로나 소송 외면하는 중국이 놓친 것

입력
2020.05.12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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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버스 정류장에서 지난달 30일 안면보호대 등 방역 복장을 꼼꼼하게 갖춘 안내 요원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다. 우한=AFP 연합뉴스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버스 정류장에서 지난달 30일 안면보호대 등 방역 복장을 꼼꼼하게 갖춘 안내 요원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다. 우한=AFP 연합뉴스

“미국이 먼저 밝혀야죠.”

지난 3월 미국 정부를 상대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던 중국인 변호사 량쉬광(梁旭光)의 주장이다. 미국에서 하루 4,500명씩 감염자가 폭증한 반면 중국은 본토 확진자가 이틀째 ‘0명’을 기록해 의기양양할 때였다. 그는 “외국 언론과는 인터뷰 안 한다”며 자신의 주장이 담긴 4분짜리 동영상을 보내왔다. “미국은 지난해 독감 환자들의 발병시점 등을 낱낱이 공개해 코로나19와 무관함을 입증하지 않는 한 전염병 확산의 책임을 져야 한다.”

검사가 변호사에게 유죄 증거를 내놓으라고 닦달하는 듯한 이해할 수 없는 논리였지만, 중국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코로나19와 인민전쟁을 치르던 때라 미국을 겨냥한 소송이 잇따를 줄 알았다. 그런데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않았다. 40여개국에서 ‘법의 심판’을 외치며 중국을 향해 집중포화를 퍼부은 것과 대조적이었다.

뒤늦게 난카이대 영어강사 왕수전(王樹振)이 지난달 바통을 이어받았다. 미 정부에 청구한 배상액은 9조6,000억위안(약 1,651조원)에 달했다. “중국인의 기개를 보여줬다”는 일부 호평과 달리 그의 집 현관문이 붉은 페인트로 뒤덮일 정도로 여론은 싸늘했다. 보다 못한 중국 법조계가 나서 수출길이 막힌 기업들의 손해 규모를 산정하고 있다. 과거 서구의 반덤핑 관세에 맞선 소송을 승리로 이끌었던 기억에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중국 정부는 일찌감치 차단막을 쳤다. 서구의 소송 대열을 겨냥해 “주권면제 원칙을 무시한 악의적인 법 남용”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법리 대결이 본격화하면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 지 모른다는 부담 때문일 것이다.

영국 런던에 있는 국제법학자위원회(ICJ)는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 제출한 고발장에서 “발병 초기 중국의 정보통제와 늑장대응은 경제적 피해에 앞서 보편적 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적시했다. 우한 봉쇄라는 ‘정치적 결단’으로 전염병 확산을 막았다고 자부하고, 전 세계 방역물자의 ‘큰 손’이라며 으스대고, 서방의 문제제기를 외교적 갈등으로만 몰아가려는 중국 정부의 접근법과는 차이가 크다. ‘코로나19 종식 선언’이 머지 않았다고 들떠 있기만 한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김광수 베이징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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