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의학원 감사실 “노사합의 했어도 폐지해야” 지적
전형마다 비정규직 5% 가점 탓에 일반 응시자 절반 탈락
노조 “비정규직 보호 위해 불가피” 사측 “폐지 검토할 것”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이 정규직 공채에 응시하면 가산점을 주기로 노사가 합의했더라도 채용 공정성을 훼손하기 때문에 가산점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내부 감사실의 지적이 나왔다. 공공기관은 채용 공정성에 더 엄격해야 한다는 게 감사실 생각이지만 노조는 비정규직 고용 안정을 이유로 반발한다.
20일 한국원자력의학원(의학원)에 따르면 의학원 감사실은 최근 ‘채용비리 의혹 감사결과 보고서’를 기관장인 김미숙 의학원장에게 제출했다. 의학원 내부직원이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한 채용비리 의혹을 의학원 감사실이 이첩 받아 조사한 결과다.
감사실은 가산점 제도에 대해 “채용 원칙과 정부 방침의 취지를 훼손해 채용 공정성을 저해한다”고 규정한 뒤 “업무 비효율을 유발하는 재직자에 대한 채용 가산점을 폐지하라”고 의학원장에게 요구했다.
가산점 제도는 의학원에서 일하는 기간제나 무기계약직 근로자가 정규직 공채에 응시하면 1차 서류(30점)와 2차 필기시험(30점) 전형의 합산 점수에 10점을 더 주는 제도로, 2018년 4월 의학원 노사가 합의해 도입했다. 당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가산점 제도가 필요하다”(노조) “장기간 근무 중인 직원이 전공 공부를 하는 외부 응시자와 경쟁하는 것이 불공정하다”(사용자 대표)는 노사 양측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도입됐다. 가산점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오자, 의학원은 2019년부터 1~3차 전형에 각각 5%씩 가산점을 주도록 변경했다.
의학원이 도입한 가산점 제도는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정규직 공개채용 일자리에 적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일자리를 정규직 일자리로 전환하는 내용의 2017년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대책과 직접 관련이 없다. 비정규직 제로 대책과 관련해 의학원은 기간제 일자리 171개를 정규직 일자리로 전환키로 결정했으며, 이번에 가산점을 주기로 한 공채 일자리는 이 171개 일자리와 무관하게 원래부터 정규직이던 일자리이다.
◇감사 “비정규직 특혜로 8명 억울하게 탈락”
의학원에서 가산점 혜택을 받아 정규직으로 공개채용된 기간제와 무기계약직 근로자는 지난해 말까지 16명이다. 감사실이 이들의 점수를 확인한 결과 가산점을 받지 못했다면 탈락했을 사람은 절반인 8명이었다. 이들 때문에 외부 응시자 8명은 억울하게 고배를 마셨다는 게 감사실의 판단이다. 감사실은 보고서에 “채용 시 필기시험과 공인영어성적이 필요 없는 별정직 또는 무기계약으로 입사한 후 정규직 채용에 응시하는 소수의 사람은 재직 중이란 이유만으로 별다른 평가 없이 가점 혜택을 받는 반면, 그렇지 않은 대다수 응시자는 합격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심각한 불공정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의학원의 직종별 평균 정규직 채용 경쟁률은 작년 기준 13.7대 1(일반업무직)~26.3대 1(보건직)에 달한다.
김미숙 의학원장은 가산점 폐지에 긍정적이다. 가산점 도입 이후인 2018년 5월 취임한 김 원장은 한국일보에 “감사 결과 확인된 문제점을 면밀히 점검해 가산점 폐지를 검토할 예정”이라며 “노동조합과도 합리적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일 하느라 바쁜 직원과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구직자와의 경쟁은 불공정하다’며 가산점 도입에 찬성한 전임 원장의 시각을 두고는 “적절한 것 같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노조 “비정규직 보호 위해 불가피” 반박
그러나 노조의 입장은 다르다. 가산점은 ‘비정규직 제로’ 대책에서조차 소외된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제도라는 지적이다. 업무경험이 풍부한 재직자에게 가점을 주는 것은 인턴 출신 우대와 다르지 않다는 주장도 내놨다. 의학원 노조위원장(지부장) K씨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비정규직 제로 대책은 정규직 전환 일자리의 공개채용 시 기존 비정규직에 가산점을 줄 수 있게 했는데 이를 참고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채용에서 비정규직에 가산점을 주는 것을 법적으로 문제 삼기는 어렵다. 기획재정부 윤리경영과 관계자는 “재직자 가산점 부여는 공정치 못한 면이 있어 소신 있는 감사 결과로 보인다”면서도 “가산점을 주면 안 된다는 명시적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중 정규직 공채 시 재직 중인 비정규직에 가산점을 주는 곳은 많지 않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 검색 결과, 대다수 공공기관은 장애인과 국가유공자 자녀 등 취업 우대에 법적 근거가 있는 대상자에게만 가산점을 준다. 하지만 의학원처럼 비정규직에 가산점을 주는 곳이 아주 없지는 않다. 한국일보 취재 결과 보건의료 분야 공공기관 가운데서는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정규직 공채에서 비정규직 등 재직자에 대해 가산점을 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형 공기업 중에서는 한국전력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비슷한 채용 우대 제도가 마련돼 있다. 단, 이런 기관들은 대체로 여러 단계 전형 중 한 단계에만 5~10% 정도 가점을 주기 때문에, 현재 1~3차 모든 단계에 5%씩 가산점을 주는 의학원이 다른 기관들보다 비정규직에 좀더 혜택을 준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의학원 감사실은 노조위원장 해임을 원장에게 요구했다. 감사 결과, K씨는 2017년 10월 의학원의 채용 담당 면접위원들을 단체 모바일 채팅방에 초대하고, 노조 사무실로 불러 특정 응시자의 탈락에 항의했다. 이 응시자는 K씨가 노조 전임자로 자리를 비우면서 기간제로 채용된 직원으로, 무기계약직 전환이 예정된 별정직 채용에 응시했다가 탈락했다. 면접위원을 불러 특정인 탈락을 항의한 건 채용 과정에 대한 부당한 압력 행사라는 것이 감사실 판단이다. K씨는 “적절한 행동은 아니었다”면서도 “정규직 전환에서 대체 노동자가 제외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것일 뿐 특정인을 위한 것은 아니었고 사익 추구 목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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