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가업 ‘성균관 수복(守僕)’ 이욱씨…
‘월급 143만원’… “아들에, 조카에 권할 수 없어”
“조선 영조 때부터 이 일을 해 왔는데 누가 이어 받을지…”
8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에서 만난 ‘성균관 수복(守僕)’ 이욱(55)씨는 답답해했다. 이씨는 요즘 사람들에게 단어조차 낯선 ‘수복’ 일을 천직마냥 묵묵히 해내고 있다. 수복은 조선 시대 묘(廟), 능(陵), 서원(書院) 등에서 제사에 관한 일을 맡아 보는 사람이다. 조선 왕조가 막을 내리면서 공식 관직에서는 사라졌다. 하지만 이씨는 “내세울 만한 관직은 아니지만 성균관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가업으로 지켜왔다”고 말했다.
이씨는 전 수복이었던 부친 이정우(2012년 작고)씨를 2004년부터 도왔다. 한국전 총상으로 상이군인인 아버지가 나이 들면서 걷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8년째 수복 일을 하고 있다. 이씨는 “앞으로 우리 가문에서 수복이 계승될 수 있을지, 밤잠을 설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씨는 성균관 내 진사식당에서 태어나 결혼 전까지 부모와 함께 성균관 내 사택에서 살았다. 성균관 수복은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으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3만3,000㎡ 넘는 성균관 내 모든 건축물과 뜰을 관리하고 매달 두 번 열리는 정기분향 준비도 해야 한다. 전국 200개가 넘는 향교에서 수시로 올라오는 유림들의 안내도 그의 몫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고된 일은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석전 준비. 석전대제에 쓰일 음식과 술, 제기, 식사를 준비하는데 대략 20일이 걸린다.
그렇게 일해 받는 월급은 143만원. “아버지 때 110만원보다 33만원 올랐지만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박봉이죠.” 이씨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어머니 김인겸(88)씨는 ‘성균관 사람’이다. 스물 셋에 결혼해 남편을 도우면서도 음복주 제조, 음식 장만 등 ‘제주(祭酒)’를 담당해 왔다. 세탁기 없던 시절엔 석전에 사용된 옷을 다 손으로 빨았다. 무보수였다.
이씨는 최저임금도 안 나오는 수복 일을 자식이나 조카에게 맡기기가 민망스럽다고 한다. 큰 형님 태형(62)씨는 “어머니가 살아 계셔서 동생이 수복 일을 의무적으로 하고 있는데 어머니기 돌아가시면 동생이 그만 두더라도 누가 뭐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고령인 김씨는 최근 낙상으로 건강이 악화했다.
숙명처럼 이어 온 가업의 위기. 그는 “돈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현 시대, 그리고 후대가 수복을 가업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 온 가문의 수고를 기억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큽니다. 문화재청과 협의해 수복이 가업으로 전승될 수 있게끔 돌파구를 찾아 줬으면 좋겠습니다.”
전국의 유림은 오는 13일 제33대 성균관장을 뽑는다.
배성재 기자 pass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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