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산업 중추인 제조 기업들 “규제가 K경제 도약의 걸림돌”
車업계 등 “주52시간제 완화를” 항공·정유업계 “세금규제 역차별”
문재인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 오는 10일 출범 3년을 맞는다. 문 대통령 스스로 “첫째도 둘째도 국난 극복”(2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이라고 선언했듯이 집권 후반기 정부의 역할은 오롯이 초유의 경제위기 대처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유행을 먼저 겪고도 ‘K-방역’ 신드롬을 일으킨 모범적 대응으로 혼란을 신속히 수습했지만, 전 세계가 뒤늦게 팬데믹(대유행)으로 얼어붙은 터라 대외 의존도 높은 우리 경제의 시련기도 길어지고 있다.
다만 “K-경제 역시 위기 극복의 세계적 표준으로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공언대로, 지금의 위기가 한국 경제 비상의 계기가 될 거란 기대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이런 기대를 현실로 바꾸고자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은 어느 때보다 단호한 목소리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 수출 산업의 중추인 제조기업들은 정부 규제로 손발이 묶여 도약의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주 52시간 근무제, 탄소배출권 등 주요 현안에서 과감한 결단을 바라고 있다.
◇“경직된 노동시간제로 반등 기회 놓칠라”
8일 산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업계에선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감이 팽배하면서 이례적으로 노사가 합심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일자리를 지키자며 1987년 설립 이후 처음으로 자발적 임금동결 추진에 나섰고, 쌍용차 노사는 올해 임금동결안을 포함한 임금 협상과 단체교섭을 조기 타결했다. 국내 5개 완성차 업체 노사는 모두 수요가 있을 때 물량을 공급하겠다며 생산을 극대화할 준비를 마친 상태다.
문제는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노동 유연성은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의 경우 현재 주간 2교대로 하루 약 16시간씩 생산시설을 운용하고 있다. 추가 물량 생산을 위해 특근을 사용하더라도 직원 1명당 주 52시간을 초과할 수가 없어, 최대 주당 1일만 추가로 공장을 돌릴 수 있다. 협력업체들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어 부품공급마저 제때 할 수 없는 처지다.
경직된 인력 운용에 코로나19 여파까지 겹치면서 인기 차종을 중심으로 부작용이 현실화되고 있다. 현대차는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팰리세이드를 고객에게 인도하는 데 5개월, 그랜저는 3개월, GV80는 9개월이 각각 소요된다. 인기 차종 생산라인을 집중 가동할 수가 없어서다. 회사 관계자는 “제네시스 GV80는 내년 1월에나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다”며 “앞으로 밀려들 수요까지 감안하면 공장을 하루 24시간 돌려도 모자라지만 주 52시간 규제가 막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생산 지체로 고객 상당수가 수입차로 돌아서고 있다는 것이 회사의 고민이다.
배터리 업계도 노동시간 유연화가 시급하다고 호소한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배터리 양극재의 주원료인 니켈ㆍ코발트ㆍ망간 등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도래한 원가 개선 기회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내부에선 전기차를 비롯해 건강기기, 가전제품 등 배터리 탑재 제품의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할 전망이라 배터리가 반도체에 버금가는 수출 효자종목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기대가 높은 상황이다.
산업계는 코로나19 유행 약화와 맞물려 수요가 폭증할 때 즉각 생산을 늘릴 수 있도록 주 52시간 근로 규제 면제, 파견ㆍ대체 근로 허용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시적으로 노동시간 한도를 초과할 수 있도록 특별연장근로 등 탄력적 운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순남 한국전지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시장 수요 급증에 대응할 생산 채비를 갖춘 만큼 정부도 기업들이 유연하게 인력을 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업종 맞춤형 규제 완화 요구도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기초산업 업종의 규제 완화 요구는 보다 폭넓고 세부적이다. 탄소배출권 규제 완화 요구가 대표적이다. 이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기업별로 배출권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탄소 배출량을 관리하는 제도인데, 탄소를 초과 배출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배출권을 구입해야 한다. 코로나 종식 이후엔 생산 회복으로 탄소배출량 급증이 불가피한 터라 기업 부담도 따라 늘 수밖에 없다.
공장이나 유류저장시설, 원자력시설 등 민간이 소유한 정화 곤란 부지를 토양 세척 방식으로만 관리하도록 강제하는 토양환경보전법도 산업계 활력을 저해하는 요소다. 토양 세척은 시설을 철거한 후에만 가능한 정화 방식이기 때문이다. 2017년 자문위원회가 위해성부터 평가하고 맞춤형 정화를 하자는 내용의 ‘토양환경보전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했지만, 정부는 추가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며 아직까지 처리를 미루고 있다.
항공ㆍ정유업계는 불평등한 세금 규제로 국제 경쟁력을 잃고 있다고 호소한다. 실제 국내 항공사는 현재 항공기 부품 구입 시 관세 전액을 면제(감면액 20%은 농어촌특별세로 납부)받고 있지만, 2022년부터 감면율이 단계적으로 축소돼 2026년엔 전액 과세로 전환된다. 최근 3년간 국내 항공사들이 감면 받은 관세가 총 3,057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매년 약 1,000억원씩 추가 부담이 생기는 셈이다. 사업용 항공기 구입 시 감면 받던 취득세 60%와 재산세 50%도 2022년부터는 전액 납부해야 한다.
정유업계는 액화석유가스(LPG) 수입사와 차별적인 세금 규제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LPG를 직접 수입하는 업체에는 부과되지 않는 석유수입부과금이 국내에 원유를 들여와 생산하는 LPG에는 ℓ당 16원씩 적용되고 있어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수입 LPG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데도 석유제품 중 LPG만 유일하게 생산ㆍ수입간 역차별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ankookilbo.com
류종은기자 rje312@hankookilbo.com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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