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A씨는 현금으로 받은 진료비를 병원 근처 자동인출기(ATM)를 통해 본인 계좌 수십 개에 입금하는 수법으로 매달 수백 만원의 매출을 빼돌렸다. 이렇게 모은 돈과 아버지에게 받은 종자돈을 더해 고가 아파트를 구입했는데, 소득세와 증여세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B씨는 특별한 소득이 없는 데도 최근 서울의 한 아파트를 매입했다. 세무당국은 이를 수상히 여기고 취득자금 출처를 조사했고, B씨 자녀가 B씨 명의를 이용해 아파트를 매입한 것을 확인했다. 이미 주택 2채를 보유하고 있던 B씨 자녀가 양도세 중과를 피하기 위해 탈법을 저지른 것이다.
국세청은 부동산 매매 과정에서 이 같은 방식으로 탈세를 시도한 고액 자산가 517명을 세무조사한다고 7일 밝혔다. 조사대상은 관계기관 합동조사 결과 통보된 탈세 의심 자료와 국세청 과세 정보를 바탕으로 선정됐다. 지난해 하반기 고가 아파트를 취득하거나 고액 전세에 들어간 사람 가운데 편법 증여 혐의가 있거나, 자금 출처가 불분명한 사람 등이다.
특히 어린 나이에 다주택을 보유하거나 호화 생활을 하는 이들도 중점 조사대상이다. 소득이 없으면서 부모로부터 고액의 자금을 편법으로 증여 받아 주택을 여러 채 취득한 사람, 오피스텔을 취득하면서 설정한 근저당 채무를 아버지가 대신 상환하는 방식으로 증여세를 탈루한 사람 등이다.
국세청은 금융 추적조사를 통해 자금의 흐름을 파악하는 동시에 필요한 경우 친인척과 관련 법인까지 조사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또 특수관계자 간 차입금을 집중해서 조사할 방침인데, 관계기간 합동조사 결과 부동산 매입 자금의 차입금 비율이 70%에 달했기 때문이다. 특히 3차 조사 중에는 자기자금이 ‘0원’인 거래도 91건으로 확인됐다.
소규모 가족 법인이나 꼬마 빌딩 투자자도 정밀검증 대상이다. 법인 설립부터 부동산 취득ㆍ보유ㆍ양도 전 과정에서 자금 흐름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법인의 수입 금액 및 비용 처리까지 조사한다. 국세청 관계자는 “조사과정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탈세한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고발하고, 명의신탁 등 법률 위반사항 발견 시 관계기관에 통보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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