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위 “이재용 사과 의미 있다” 구체적 실천안 요청
삼성그룹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오너경영 종료’(6일) 선언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삼성을 글로벌 거대기업으로 성장시킨 동력인 오너경영의 유효성은 여전하다는 반론적인 시각 이면엔, 이젠 경영권 승계 문제가 삼성의 최대 리스크로 부상한 현실을 감안한 결단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나 학계 등은 향후 삼성 경영체제와 지배구조의 향배에 주목하면서 이 부회장이 ‘중장기 비전 제시’란 오너경영 특유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구축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7일 재계에 따르면 창업주 일가가 최고경영자(CEO) 겸 지배주주 역할을 겸하는 오너경영은 국내 주요 대기업의 보편적인 경영 체제다. 실제 지난해 자산규모 기준 국내 10대 대기업집단(그룹) 가운데 오너 일가가 총수를 맡고 있지 않은 곳은 포스코(6위)와 농협(9위)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국내 대기업 총수 가운데선 처음으로, 그것도 최대 그룹 총수의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공개 선언의 무게감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가족이나 친족에게 주주권과 경영권을 함께 승계하는 관행이 강하게 남은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선언은 전통을 바꾸려는 시도로 여겨진다”고 논평했다. 재계 관계자는 “재벌기업에 대한 국민 정서가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이 구미 선진국 방식의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할 경우 한국식 오너경영의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지난 6일 이 부회장이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가진 ‘대국민 사과문’ 발표에선 그룹 경영체제의 변화가 감지됐다. ‘오너 일가의 경영 참여는 내가 마지막’이라고 밝힌 부분과 ‘오너경영자로서 내 역할은 역량과 주인의식을 갖춘 인재를 찾아 경영을 맡기는 것’이라고 내비친 이 부회장의 메시지에서다. 이 부회장이 그룹 총수를 역임하는 동안 글로벌 기업에 걸맞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하는데 전념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배경이다.
이런 전환이 삼성그룹에게 돌아올 득실 여부에 대한 견해는 엇갈린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오너가 후계자가 경영 능력을 갖췄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 내부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최고경영자(CEO)를 찾겠다는 이 부회장의 구상엔 긍정적 측면이 있다”며 “다만 전문경영인은 정해진 임기에 단기적 성과를 내야 하는 터라 장기적 안목을 갖고 회사를 이끌어가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도 “실증연구를 보면 지분이 많은 경영자일수록 좋은 실적을 내는 경향이 강한 게 사실이다”고 전했다.
다만 삼성그룹 자산규모가 415조원(지난해 기준)에 이르는 상황에서 오너 일가 지분이 낮고 상속·증여세율은 높은 사정을 감안한다면 오너경영 체제 유지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도 제기된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운영상 문제가 적지 않았지만 과거 미래전략실은 삼성그룹의 능력 있는 최고경영진을 키우는 산파 역할을 한 게 사실이다”며 “이런 헤드쿼터(본부) 조직을 살려 미래 CEO 후보들을 훈련시키고 선택된 이들에겐 임기를 충분히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포스코의 박태준,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처럼 장기적 안목을 갖춘 전문경영인을 길러낼 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시각에서다.
이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창업주 일가와 그룹 간 어떤 관계가 형성될지는 추측이 분분하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뿐 아니라 보유지분도 승계하지 않겠다는 건지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주주권을 갖고 있다면 경영상 공식 지위가 없더라도 회사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할 법적 권한이 있는 만큼, 지분 증여 여부에 따라 오너 가문과 전문경영인의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이 부회장의 전날 대국민 사과에 대해 “위원회 권고에 따라 이 부회장의 답변 발표가 직접적으로 이뤄지고 준법의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점에 대해 의미 있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 실행방안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지속적인 준법경영체계 수립 △실효성 있는 노동3권 보장 △실질적인 시민사회 신뢰 회복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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