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다목적 방사광가속기가 들어설 부지로 8일 충북 청주가 최종 선정되면서 경북 포항에 있는 기존 방사광가속기와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산업계와 과학계가 지금까지 기술적 한계 때문에 불가능했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을 전망이다.
오는 2022년 첫 삽을 뜰 예정인 신규 방사광가속기는 4세대로 분류된다. 둘레가 약 800m에 이르는 거대한 원 모양이다. 포스텍 포항가속기연구소가 운영 중인 기존 두 가지 방사광가속기는 각각 길이 약 1,100m의 커다란 막대 형태(선형)인 4세대와 둘레 약 280m의 원형인 3세대다. 정부 계획대로 2027년 신규 가속기가 완공되면 우리나라는 4세대 원형과 선형 방사광가속기를 모두 보유하게 된다. 4세대 선형을 운영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은 현재 4세대 원형을 각각 설계, 계획 중이고, 중국은 4세대 선형과 원형을 동시에 짓고 있다.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켜 거대한 자석 속에 넣으면 진행 방향이 곡선으로 휘어진다. 이때 전자는 물리 법칙에 따라 일정량의 에너지를 잃어버리고, 이 에너지는 특정 파장의 빛(방사광)으로 바뀌게 된다. 방사광가속기는 이렇게 얻은 빛으로 물체의 미세한 구조나 성분을 분석하는 장치다.
선형과 원형 4세대 방사광가속기의 가장 큰 차이는 장치에서 나오는 빛의 속도와 에너지다. 4세대 선형은 빛이 100피코초(1피코초=1조분의 1초)에 불과한 ‘찰나’의 시간 동안 발생한다. 빛이 머리카락 폭을 반도 못 지나가는 어마어마하게 짧은 시간이다. 이를 이용하면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포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살아 있는 바이러스의 단백질이 세포와 만나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 식물이 햇빛을 받아 어떤 과정을 거쳐 산소를 내뿜는지 등을 확인하는 게 가능하다. 원자 수준의 화학반응을 영화처럼 촬영하고 기록할 수 있게 돼 효율적인 연료나 촉매 등을 개발할 수도 있다. 4세대 선형 가속기 완공 직후 포스텍 연구진은 이를 이용해 물이 얼음으로 결정화하기 직전의 분자 구조를 알아내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과학자들은 바이오 기업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특성을 밝히는 데도 4세대 선형 가속기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가 만드는 빛은 선형보다 속도가 느린 대신 에너지가 높다. 이는 구조가 복잡한 정지 상태의 물체를 변형하지 않고 내부를 관찰하는 데 적합하다. 1990년대 LNG선박용 철판을 개발하던 포스코는 극저온으로 내려가면 철판이 자꾸 깨지는 결함 때문에 애를 먹은 적이 있다. 당시 국산 철판 내부에 외산보다 주석 성분이 더 많은 게 원인이었다는 걸 바로 3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가 알아냈다.
4세대 원형 가속기는 3세대 원형보다 빛의 투과력이 세기 때문에 더 편리하면서도 더 정밀한 내부 구조 분석이 가능하다. 과학자들은 특히 철강이나 소재, 배터리 산업 분야에서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의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소재나 배터리 제품을 훼손하지 않은 채 내부 구조나 손상 부위 등을 꿰뚫어볼 수 있는 것이다.
포스텍 부설 포항가속기연구소의 고인수 소장은 “연구 영역을 달리 설정해 서로 돕고 선의의 경쟁을 하며 첨단 과학과 산업 발달을 이끄는 방향으로 포항과 청주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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