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동심을 사로잡은 말괄량이 삐삐는 어른의 눈으로 보면 사실 가여운 결손 아동이다. 엄마는 천국에 있고 해적이었던 아빠는 폭풍우에 휩쓸려 실종됐다. 혼자 사는 삐삐 곁엔 원숭이와 말 한 마리뿐. 하지만 삐삐는 씩씩하다. “들쭉날쭉 오르락내리락 요리조리 팔딱팔딱” 온 동네를 누비면서 위기에 처한 친구를 도와주고 가식적인 어른들을 골탕 먹인다. 결손 아동에다 문제아이기도 했던 셈이다.
그러나 삐삐는 누구보다 정의롭고 용감하며 주체적이다. 관습과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았다. 어린아이, 특히 여자아이에게 이 같은 자유와 주체성을 부여한 동화는 많지 않다. 삐삐가 세상에 나온 때가 1945년이라는 걸 떠올리면 더 놀랍다.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전기
옌스 안데르센 지음ㆍ김경희 옮김
창비 발행ㆍ492쪽ㆍ2만5,000원
이런 삐삐에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의 삶이 스며 있다. 그는 ‘삐삐 롱스타킹’ 시리즈와 ‘사자왕 형제의 모험’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동화작가이면서 사회운동가였다. 여성에게 억압적인 시대에 미혼모로 살면서 작가이자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두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현실 참여를 주장하고 실천했다.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은 미공개 편지와 일기, 사진 등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가 잘 몰랐던 린드그렌의 삶과 문학을 조명한 평전이다. 약자를 위해 투쟁한 린드그렌의 삶 자체가 경이로운 감동 드라마다. 만약 삐삐가 어른이 됐다면 린드그렌처럼 살지 않았을까. 세파에 찌들어 삐삐를 잊고 지냈다면 이 책으로 ‘또 다른 삐삐’ 린드그렌을 만나 봐도 좋겠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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