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 뇌물액수 늘어 실형 위기… 법원 요구로 준법위 설치, 대국민 사과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문 발표로 ‘국정농단’ 사건의 네 번째 재판(파기환송심)은 일단 이 부회장에 유리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진지한 반성이 양형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일반론을 빼고 보더라도, 재판부가 양형에 반영하겠다며 요구한 조건들을 거듭 실천한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6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경영권 승계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을 언급하며 자신과 삼성을 둘러싼 논란은 근본적으로 그룹 승계 문제에서 비롯됐음을 인정했다. 그는 또 준법경영이 삼성의 문화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재판 이후에도 삼성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이 중단 없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부회장이 법원의 뜻을 받들며 올해 1월 준법감시위를 설치한 데 이어, 위원회의 ‘사과 권고’까지 수용함에 따라, 앞서 재판부가 요구한 ‘실효적 준법감시제도’의 외관은 보여준 셈이 됐다. 이 부회장의 재판을 맡고 있는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는 지난해 10월 실효적 준법감시 제도의 마련을 주문했고, 올해 1월에는 준법감시위의 활동을 양형에 반영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했다.
재판부가 제시한 조건을 외형상으로나마 갖춤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양형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지만, 대법원을 거치며 뇌물 액수가 86억원으로 늘어 집행유예와 실형의 기로에 서 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액수가 50억원이 넘으면 징역 5년 이상을 선고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우 ‘수동적 뇌물’을 인정받아 집행유예를 받은 전례가 있다.
남은 재판의 막판 변수는 박영수 특별검사가 낸 재판부 기피신청 결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준법감시위를 양형에 반영할 수 있다는 언급을 하자 특검은 “재판부가 편향적인 재판을 하고 있다”며 기피신청을 냈고, 이 때문에 재판은 멈춰 선 상태다. 기피 신청을 심리 중인 대법원이 특검의 신청을 받아들이면, 새로운 재판부의 판단을 받게 된다. 이 경우 준법감시위와 이 부회장 사과가 양형에 미치는 영향은 지금보다 축소될 수도 있다.
이날 이 부회장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사이의 부당합병 의혹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검찰은 삼성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분식회계를 저지르고, 관련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수사부(부장 이복현)는 이르면 다음 주 이 부회장 소환을 두고 세부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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