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 채비가 한창인 21대 국회가 초선의원 68명이 등원하는 ‘초선시대(初選時代)’를 맞았다. 4ㆍ15 총선에서 우리 유권자들은 노련한 기성 정치인들보다 경험 없는 신인들을 선택했다. 투표장에서도 18세 유권자들이 처음으로 합류했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의 압승이라는 정치적 결과보다 훨씬 더 큰 변화는 사회문화적 세대교체이다. 익숙한 권위주의와의 결별이고, 젊은 진보의 주류화를 의미한다.
권력에 기반한 자기중심주의가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시대의 기득권자들이 이제 ‘꼰대’라고 불린다.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옳다고 주장하고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습성이 있다. 전지적 참견시점, 마이크 독점, 연중무휴 훈계와 지적질이 특징이다. 선을 넘어 얼평(얼굴 평가)과 몸평(몸매 평가), 사생활 참견도 수시로 하며, 성추행 같은 범죄적 행각을 벌이기도 한다. 그동안 너무 싫어하면서도 따라주는 척했던 젊은 세대들이 이제는 더는 참아주지 않고 반격하고 응징한다. 사회문화적 권력구도가 변했다.
특별한 악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모든 곳, 내 안에서도 ‘무의식적인 꼰대질’과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진다.
우리집 20대 아이에게 저녁 조깅하고 나서 치킨을 먹겠다는 계획에 대해서 기름진 식사는 피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가 ‘마이 보디, 마이 초이스’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것은 엄마의 배려고 선의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이라는 짜증이 돌아왔다. 먹을 것을 마련해놓고 ‘너 주려고 했다’든가 하는 ‘본인이 원하지 않은’ 배려는 하지 않아주면 고맙겠다는 인사도 받았다. 아이들과 잘 지내지만 가끔씩 사고가 나는 건 대부분 나의 ‘오지랖’이 원인이었다. 나는 관심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상대가 원하지 않았으니 잔소리가 됐다. 좋은 말 아니면 말하지 않는 게 정답인 줄 아는데 잘 되지 않는다.
가정을 화목하게 일구는 데 성공한 할머니 선배들의 처신이 도움이 많이 됐다. 이 할머니들은 아이들과 잘 지내는 방법을 ‘내려놓음’이라고 말한다. 이 할머니들은 아이들과 손자들이 자신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갈등이 생길 때는 언제나 ‘당신이 옳다’는 전략을 적용해 엄마 자신의 생각을 빨리 포기한다는 것이다. 할 말 많지만 가슴속에 묻어두고, 주기만 한단다. 화목한 가정은 말 잘 듣는 아이들의 순종이 아니라 현명한 어른의 내려놓음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요즘 ‘당신이 옳다’고 다짐하는 일이 많아졌다.
상관하지 말라는 자를 이길 방법은 없다. 물어본 질문에 답하면 선배, 물어보지 않은 말을 하면 ‘꼰대’로 구분한다. ‘라떼 이즈 홀스(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기성세대의 지루한 서사)’ 화법도 딱 질색으로 퇴출 대상이다.
이런 대화법에서 그것이 사랑인지 참견인지 시비를 가릴 필요는 없다. 피해 당사자의 용서가 진정한 용서이듯이, 대화에서는 듣는 편의 느낌이 기준이다. 소통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면 충고나 참견 대신 경청하는 쪽으로 얼른 백기 투항하면 된다.
경험 많은 어른들은 경험 없는 젊은이들이 실수할까 봐 자꾸 뭔가 조언을 해주고 싶어 하지만 그건 기우다. 어른들의 옛날 경험이 새로운 시대에는 인생의 정답이 될 수 없고 어른들이 말하고 싶어 하는 그 문제에 대해서 당사자들이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숙고하고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걸 믿어주는 걸로 어른의 역할은 끝난다. 그래도 정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고 싶은 욕구를 참기 힘들 때는 ‘애정 표현은 돈으로 한다’는 원칙을 따르면 된다.
‘초선시대’의 시대정신은 ‘탈(脫)꼰대’이다. 다른 사람 상관치 말고 ‘나나 잘하자’. 그리고 믿자. 내가 옳은 게 아니라 ‘당신이 옳다’고!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