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검사 항체 확인 땐 여권 발급… 봉쇄 풀겠다는 의도 숨어있어
의학계 “면역 장담 못해” 비판 속… 각국 전면적 면역검사 돌입
유럽 각국이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전면적인 면역검사에 돌입하자 ‘면역 증명서(혹은 여권)’ 발급 논쟁에도 불이 붙었다. 이 증서는 항체가 확인되면 면역력이 있다고 판단해 일종의 자유 이동권을 주자는 것이다. 감염병 전파 위험을 막으면서 봉쇄령을 풀겠다는 다목적 포석이 숨어 있다. 하지만 의학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항체가 생겨도 완전 면역을 장담하기 어려워 바이러스 재확산을 부를 염려가 크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5일 “전 국민 면역검사를 진행 중인 독일이 ‘면역 여권 딜레마’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몇 달 안에 모든 국민의 항체 표본을 추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독일 보건당국은 이날 “검사 여력이 충분하다”고 공표했다.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와 계약을 맺어 이달에만 항체검사를 300만건 시행하고, 이후 건수를 늘려 월 500만건 검사를 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원래 목표한 면역 여권 발급은 결정을 보류했다. 옌스 스판 독일 보건장관은 “국가윤리위원회 자문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면역 여권과 관련한 어떤 법적 조치도 취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항체검사는 시작했으나 최종 정책 결정을 내리려니 문제가 한 둘이 아닌 탓이다. 가령 면역 여권을 발급하면 나머지 제한 조치를 적용 받는 시민들의 반발이 뻔히 예상된다. 또 “여권을 발급받으려 부정한 방법으로 감염을 시도하는 경우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고 스판 장관은 설명했다.
이번 달 우선 15만명을 상대로 항체 검사를 실시하는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불거졌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롬바르디주(州)의 한 의사가 “여전히 항체가 얼마나 오랜 기간 바이러스 감염을 막아낼 수 있는지 연구 중인 만큼 이런 검사는 쓸모가 없다”고 한 비판을 보도했다. 심지어 베네토주의 항체검사 조정관도 “면역 증명서는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그럼에도 경제 활동 재개가 절실한 시민과 기업들엔 항체 검사에 대한 기대감이 줄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NYT는 전했다.
영국 정부는 얼굴 인식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면역 증명서’ 도입까지 검토하고 있다. 치열한 논쟁에도 증명서 발급을 기정사실화하고 실제 적용 방식을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얼굴 인식기술을 개발하는 온피도란 업체가 최근 정부에 관련 세부 계획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영국은 앞으로 1년 안에 30만명의 코로나19 면역 여부를 검사할 계획이다.
나라 전역을 틀어 막았던 유럽 국가들로선 면역 증명서 정책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게 고민이다. 봉쇄 조치로 인한 경제 피해가 너무 커 더는 사회ㆍ경제활동을 멈출 수 없어서다. 백신도, 확실한 치료제도 없으니 감염 위험을 최소화할 다른 방법을 마련하기도 마땅치 않다. 롬바르디주 치슬리아노의 루카 두레 시장은 “사람들이 (증명서를) 안전 조치로 느낄 것”이라며 증명서 발급을 지지했다. 다만 증명서 보유자도 공중보건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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