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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페미니즘이 길을 묻다] 두 달여 ‘멈춤’에 심화된 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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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페미니즘이 길을 묻다] 두 달여 ‘멈춤’에 심화된 성차별

입력
2020.05.06 01:00
수정
2020.05.06 15:19
6면
0 0

최고의 부담, 최악의 손해

돌봄ㆍ노동ㆍ연결자로 다중 역할

코로나 재난에 맞서 싸우지만 여성의 피해ㆍ기여, 사회가 망각

경제에 초점 둔 해법들

일상성 회복=경제 회복 동일시

소비 활성화ㆍ기간산업 투자 등 ‘생계부양자’ 남성 일자리에 집중

사회적 재생산 모델로 전환

위기초래한 경제모델 환원 안돼

환경ㆍ보건의료 분야 투자 늘려 직업 재설계ㆍ대안적 사회 모색을

‘코로나19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명제 앞에서 페미니즘도 예외가 아니다. 구로콜센터 집단감염이 보여줬듯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방역에 취약한 여성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이 드러났고, 젠더 간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같은 시기 국내에서는 디지털 성착취 범죄의 실상이 텔레그램 ‘n번방’ 사태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한국일보는 신종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한국 사회가 맞이한 위기와 전환의 시기를 페미니즘 시각에서 살펴보기 위해 다섯 명의 국내 대표적인 페미니즘 연구자들의 글을 연재한다.
[저작권 한국일보] 일일 발생 신종 코로나 확진자 수가 101명에 달했던 지난달 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근무하는 여성 노동자가 한산한 입국장 1층을 내려다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저작권 한국일보] 일일 발생 신종 코로나 확진자 수가 101명에 달했던 지난달 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근무하는 여성 노동자가 한산한 입국장 1층을 내려다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코로나 재난과 성평등적 사회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 찰스 왕세자, 영화배우 톰 행크스, NBC 유니버설의 CEO인 제프 쉘 같은 유명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리면서 “감염병은 계급과 인종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게 됐다. 전염병의 ‘숙주’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고 취약하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사태와 같은 재난의 영향력은 이미 존재하는 젠더, 계급, 인종적 불평등에 기생하며 증폭한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신종 코로나 사태는 여성과 남성에게 다른 경험을 하게 한다. 유엔 여성기구의 마리아 홀츠버그는 “위기는 성차별을 심화시킨다”라고 말했다. 휴교와 자가격리로 인한 여성의 가사와 돌봄 노동의 급증, 가정폭력의 증가, 보건사회 분야 노동자의 70%에 달하는 여성들의 감염 위험에의 노출, 취약한 일자리에 집중된 저소득층 여성의 해고와 강제 휴직을 예로 들고 있다. 불과 2달여간의 유예와 멈춤이 “여성의 성 역할을 50년 이전으로 퇴행시켰다고 할 정도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또한 ‘최악의 부담, 최악의 손해’라 할 정도로 여성의 상황이 심각하다. 3월 한 달간 주로 요양, 돌봄, 급식, 청소, 서비스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40~60대 중년 여성의 해고가 50~60% 이상 급증했고, 11만 5,000여 명이 실직했다. 이 수치는 2009년 이후 최대치다. 교육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고용 감소율은 남성( 31%)의 두 배(70%)에 달한다. 여성들은 소득만으로는 월 생활비를 감당해낼 수 없는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일용직에 재취업하면서 생계 보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여성들은 신종 코로나를 경제 문제만큼이나 감정과 몸의 쇠진과 혼란으로 경험한다. 임신 중인 여성은 최악의 의료 환경 속에서 과연 아이를 낳을 것인가를 고민하며 밤잠을 설친다고 한다. 기저질환에 시달리는 노인들의 감염에 대한 가중된 두려움을 돌보다 기진맥진해 집에 돌아온 요양보호사 여성은 다시 생기있고 활발한 엄마로 역할 전환하는 것이 감정적으로 매우 힘들다고 말한다. 재중동포 간병인 여성은 오랜 기간 돌봐 온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보지 못한 채, 중국인이라 감염시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바로 해고당했다.

해고와 강제 휴직이라는 노동자 지위의 상실, 가족 구성원의 임금 손실을 메우기 위해 더욱 열악한 초단시간 일자리를 수용해야만 하는 상황, 공공적 개입의 부재를 메우며 가족과 지역사회의 요구를 해결하는 연결자로서 여성은 고강도의 삶의 위기로 신종 코로나 재난과 맞서 싸우고 있다. 여성은 돌봄자-노동자-연결자로서의 다중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최고의 부담을 지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신종 코로나 위기가 여성의 노동, 공감 및 돌봄 능력에 기대어 해결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의 피해나 기여를 망각한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나 언론이 젠더 관점으로 상황을 분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신종 코로나가 고용 상황에 미치는 영향력에 관한 성별 분리 통계조차 제공하지 않는다. 위기와 회복의 과정에서 다시 국가를 남성화하려는 것인가.

◇재남성화하는 국가

신종 코로나는 사스, 메르스처럼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팬데믹이다. 팬데믹은 동식물 생태계의 지속적인 파괴, 투기성 난개발, 다국적 기업의 자원 약탈, 대량 식량 및 육류 생산체제로 인한 환경 파괴가 초래한 결과다. 인간 중심적인 것 ‘너머’의 세계가 너무나 인간적인 것에 의해 영향을 받아 변해버린 불확실성의 시대, 즉, 인류세에서 자주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우리가 초래한 문제다.

많은 사회 비평가는 신종 코로나 재난이 약탈적인 글로벌 자본주의의 실패를 보여줬다고 말한다. 재앙은 글로벌한 수준의 위험을 만들어내고, 규모 또한 증대되는 것에 비해, 정상성의 회복은 단일 국가 차원에서 이뤄진다. 말로는 ‘공동의 노력’을 외치지만,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위기 상황을 진압하기 위한 규율적이고 행정적인 조치들을 남발하면서 빠른 시간 안에 정치적 패권을 회복하고자 한다. 이런 긴급 대책들은 익숙한 남성 정치 엘리트와 자본가의 서사를 되풀이한다.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는 완치 판정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규제를 완화하고 경제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라고 선언했다. 일부 국민을 죽도록 내버려 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속적인 기만은 ‘위대한 국가’의 실질적 부재를 반증한다.일본의 3ㆍ11 재난(2011년 대지진)과 복구 과정을 연구한 미레 코이카리(Mire Koikari)는 일본 정부가 헌법, 부계 혈족주의, 군대, 스포츠 등을 통한 남성성의 강화를 통해 국가 복원력을 끌어냈고, 이것이 현재의 우경화된 아베 정부를 탄생시켰음을 분석한다. 재난의 근본적 원인을 성찰하고 해결을 위한 장기적 기획을 하기보다는 국민의 두려움과 위축을 이용하여, ‘국가를 다시 남성화’했다. 재난의 복구는 이렇게 무모한 모험의 모습을 띨 수 있다.

코로나 방역의 모범국가로 회자되는 우리나라도 일상성의 회복을 경제회복과 동일시한다. 모든 이에게 재난소득을 제공해 소비를 활성화하여 자본가와 상공인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이며, 건설이나 IT 등 기간산업에 투자하여 일자리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1997년 IMF, 2008년 금융 위기 때와 비슷한 관습과 해법이 되풀이되는 느낌이다.

경제 활성화라는 추상적 가치는 늘 자본의 논리에 힘을 보탬으로써, 해고, 감축, 유연화 등과 같은 적대적 노동 관행을 부추긴다. 고용 유지나 창출이라는 대기업의 헛된 약속에 공적 자금을 투여할 때, 창출되는 인원보다 수십 배에 달하는 열악한 지위의 유연 노동자가 생성되고 반복적으로 해고된다는 점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현재의 코로나 해법이 여전히 생계부양자로 간주한 남성의 일자리 회복을 위해 특정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는 느낌 또한 지울 수가 없다. 긁힘의 흔적 없는 회복은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를 통해, 덜 배제적이고 성평등적인 사회로 이동할 수 있는 대안적 사회 기획은 가능하다.

◇경제모델에서 사회적 재생산 모델로

신종 코로나 위기는 자본축적과 생명 안전 간의 모순을 보여준 정치위기다. 포스트-코로나 회복의 상상력이 다시 익숙한 경제 중심 모델이 돼서는 안 된다. 정작 이런 위기를 초래한 글로벌 엘리트 정치-자본가의 사회적 책임과 회복의 역량을 제대로 묻기도 전에, 정상성의 회복을 경제모델로 환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바이러스는 최고의 결핍상태에 놓인 사람들 속에서 자생적 회로를 구성한다는 말처럼, 몇 개월간의 정지와 유예 상황을 견뎌낼 자원이 없어, 일터와 삶터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복귀와 회복을 위한 장기적 개입이 필요하다. 젠더와 계급 불평등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재난으로 인한 부담을 더 많이 진다. 이런 문제를 만들어낸 정치-자본가의 이해관계가 다시 독점적 해법이 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조급한 ‘경제’ 조치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기획은 구별되어야 한다.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건설, 항만, 교통 등의 기간산업이나 무조건적인 미래주의의 상징인 IT와 디지털 산업에 공공자원을 투자한다고 해서 위기가 매끄럽게 봉합되지는 않는다. 기간산업이나 사회간접자본의 의미가 변해야 한다. 즉, 사회가 건강하게 재생산되는 데 필요한 생태계의 회복과 인간의 생명, 건강, 교육, 가치관, 돌봄 등에 관여하는 사회적 개입과 투자를 늘려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 재생산 모델이다.

재난 때마다 우리가 확인한 진실은 인간은 돌봄과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이고, 돌봄이 개인의 희생이 아닌 협력적 공공의 개입을 통해 이뤄질 때 가장 공평하다는 점이다. 문제는 생명과 생태계를 돌보는 노동의 가치가 여전히 다른 노동에 비해 저평가되고, 이런 노동을 여성이나 이주자의 일로 본질화한다는 점이다. 환경, 보건의료와 교육 분야는 삶의 질도 높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의료진, 보건의료행정, 요양, 간병, 위생 등을 모두 포괄하는 공공 보건의료 시스템의 설계와 공교육과 사교육을 연결하는 시공간적 통합 교육시스템의 구성을 통해 여성들의 일자리를 전문화, 안정화하면서 동시에 성별 분업을 해체할 수 있다.

포스트-코로나의 대안적 사회 구성은 이제까지 들리지 않았던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아냄으로써만 가능하다. 이들의 경험과 희망이 직업의 재설계와 대안적 사회 기획에 반영될 때, 인간과 동료 종과의 공존, 인간 간의 평등에 다가설 수 있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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