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산불 학습효과, 정부 빠른 지원·주민 적극 협조… 원인은 화목보일러 불씨
지난 1일 밤 ‘양간지풍’(襄杆之風·양양과 간성·고성 사이에 부는 국지적 강풍)을 타고 맹렬한 기세로 번지던 강원 고성 토성면 도원리 산불은 산림ㆍ소방당국의 효과적인 방어선 구축과 정부의 빠른 지원, 주민들의 적극 협조라는 ‘3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몸을 가누기 힘든 소형 태풍급 양간지풍은 물론 야간이라 진화헬기를 띄울 수 없었던 악조건에서도 단 1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은 이유다.
이번 산불에 따른 산림피해 면적은 85㏊로 고성과 속초 일대를 휩쓴 지난해 4월 4일 화마(火魔)의 피해면적(1,227㏊)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재산 피해도 주택 1채와 비닐하우스, 축사 등 건물 6동이 불에 타는데 그쳤다.
피해가 작년보다 적었던데 대해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3일 본보 통화에서 “도원리와 학야리 일대에 구축한 3군데 저지선이 산불 확산을 막은 일등공신”이라고 분석했다.
산림ㆍ소방당국은 1일 오후 8시53분쯤 발화지점에서 3.2㎞ 가량 떨어진 도학초교와 도원리, 학야리 야산 등 3곳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산불확산을 감지한 지 30여분 만이다. 해발고도 284m의 운봉산 넘어 자리한 해안마을 등 민가 371세대와 군 부대를 지키기 위한 마지노선이었던 것이다.
당국은 3곳의 저지선에 소방차 28대와 소방ㆍ진화대원 82명을 투입, 순간풍속 최대 16m에 이르는 강풍에 맞서 밤새 불과의 사투를 벌였다. 그 사이 도원ㆍ학야ㆍ운봉리 주민 580여명과 훈련병을 포함한 군 장병 1,800여명이 경동대와 아야진초교 등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 이 교수는 “산림과학연구원이 분석한 산불확산 예측 모델도 효과적인 저지선 구축에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빠른 지원도 피해를 줄이는데 한몫 했다. 소방청은 신속히 대응 2~3단계를 발령, 전국 소방대원 5,134명과 소방차 등 장비 462대를 고성에 집결시켰다. 산불은 이 같은 ‘물량공세’에 막혀 몸집을 키우지 못했고, 일출과 동시에 헬기 39대가 출동하자 12시간 만에 제압됐다.
지난해 4월의 ‘학습효과’를 토대로 한 자치단체의 대응이야말로 돋보였다.
강원도 동해안산불방지대책본부는 주택에서 시작된 불이 야산에 옮겨 붙은 1일 오후 8시 25분쯤 전직원 동원령을 내렸다. 10여분 뒤엔 토성면 주민들에게 대피안내 문자를 보냈다. 지난해 큰 산불로 난리를 겪었던 주민들도 행정당국의 대피 명령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대피는 신속히 이뤄졌다.
특히 산불지점에서 3㎞ 떨어진 장애인 시설에서 생활하는 48명도 공무원과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현장을 빠져나왔다. 연휴 기간 건조주의보와 강풍특보가 내려지자 미리 비상대응 태세를 갖췄기 때문에 신속한 대응이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하늘이 도운 대목도 있다. 새벽을 넘어서자 바람이 초속 5~6m까지 잠잠해졌고, 지난해 4월과 달리 나뭇잎과 풀들이 많이 자라 불씨를 날아가지 않게 잡아준 게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줬다는 분석도 나왔다.
다만 산불의 원인이 ‘인재(人災)’라는 점은 작년과 닮은 꼴이다. 산림당국과 경찰은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 산비탈에 자리한 주택의 화목 보일러에서 튄 불씨가 옮겨 붙어 대형산불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집주인은 “목욕물을 데우던 화목보일러가 원인이 된 것 같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2일 오전 경찰과 소방, 한국전기안전공사 등 전문가 40여명은 최초 발화 지점으로 지목된 이 주택에서 정밀감식 작업을 벌였다.
고성=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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