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빈곤층도 거리두기 가능한 ‘공간 복지’ 국가 지원을”
최재천 “포스트 코로나, 거리두기 등 ‘행동 백신’이 효율적”
김우창(83)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대표 인문학자다. 인문학에서 출발해 사회ㆍ자연과학을 아우르는 통합적이고 입체적인 사유는 그에게 ‘지식인들의 사상가’(김호기 연세대 교수)라는 평을 안겼다.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 문명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통섭’ 개념을 널리 유행시킨 최재천(66) 이화여대 석좌교수 역시 세계적인 사회생물학자이면서 인문학적 사고에 관심이 많아 대중에게도 친숙한 학자다. 미 하버드대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초대 국립생태원장,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의장을 지냈다.
지난달 29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주제로 진행된 대담은 대체로 최 교수가 낙관에 기초해 미래를 내다보면 김 교수가 더 살펴야 할 현실을 짚는 구도였다. 최 교수의 시선이 이상을 향해 달려갈 때 김 교수는 일상의 제동력을 신중하게 환기했다.
-코로나19 사망자가 20만명이 넘었다. 팬데믹(대유행)이다. 이동이 멈추고 교류가 끊겼다. 문명사적 대사건이 될까.
최재천 교수(이하 최)=이번 사건 한 번으로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듯하다. 사스나 메르스 때보다 규모가 커진 건 여러 나라들의 잘못된 초동 대응 탓이 크다. 좀 지나면 수습될 테고 사람들은 이번 위기를 망각할 공산이 크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더 벌어져야 근본적 변화가 시작될 거다.
김우창 교수(이하 김)=동의한다. 과거에도 일어난 사건이다. 지금 코로나19가 더 큰 사건으로 인식되는 건 ‘커뮤니케이션 레볼루션’, 즉 매체 발달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 곧장 전달되다 보니 더 가깝게 느껴지고 체감 공포가 커진다. 물론 실제 가까워지기도 했다. 지역 간 해비테이션(거주) 교환, 접촉이 늘었다. 옛날보다 여행사가 얼마나 많아졌나.
최=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를 아프리카에서 한국으로 옮겨 온 건 멧돼지가 아니라 사람과 사료다. 예전 같으면 국지적 에피데믹(유행) 수준으로 끝났을 일을 사람이 팬데믹으로 만드는 거다.
-그래서 탈(脫)세계화가 촉진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물론 고민은 될 거다. 가령 우리나라의 경우 식량의 해외 의존도가 높다. 식량 수출국이 자국민 먼저 먹이겠다며 안 팔면 난감해진다. 대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기업들이 해외 공장을 하루아침에 포기할까. 상상하기 힘들다. 되돌리기에는 세계화가 너무 많이 진행됐다.
김=세계화는 이미 인정해야 할 현실이다. 뒤집기 어렵다. 필요하고, 또 그나마 가능한 건 방향의 재설정, 재정비, 재조직이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다. 강력한 정부의 문제다. 미국 등 서양이 한국보다 대처를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정부 말을 좀체 듣지 않는 문화다. 집에 들어가 있으라고 해도 안 듣는다. 그 때문에 코로나19 사태로 국가의 강력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사람들이 느끼기 시작했다. 유럽도 이제 진단 거부자들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다. 강력한 국가를 받아들일 여건이 갖춰지고 있는 것이다.
최=환경 문제를 대하는 분위기도 달라졌다. 기후변화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이러다 다 죽는다고 아무리 경고해도 안 듣던 이들이 이제 계산을 시작했다. 자연을 더 건드렸다가는 손해를 볼 것 같다는 걸 느낀 거다. 환경운동가들이 이끌어 내지 못한 변화가 바이러스 덕에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다.
김=하지만 관건은 정치적 결정이다. 정치적 변화 없이는 환경 문제에서도 모멘텀이 마련되기 어렵다.
-당장 전 세계가 기다리는 건 백신이다.
최=독감을 보라. 백신을 맞아도 10명 중 3, 4명은 여전히 독감에 걸린다. 이 수준까지 개선되는 데만도 70년이 걸렸다. 코로나 백신이 개발된다 해도 효율성 문제는 결국 숙제로 남는다. 더구나 코로나바이러스는 변이도 많다. 백신이 답이 될 수 있을까 싶은 이유다. 그래서 화학 백신보다 더 효율적인 건 ‘행동 백신’이다. 바이러스는 몇 미터만 떨어져도 감염 경로가 차단된다. ‘거리 두기’를 지키며 손 씻기만 잘 해도 팬데믹으로 가지 않는다.
김=문제는 거리를 두고 싶어도 둘 수 없는 사람들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코로나19에 걸린 건 사는 환경이 나쁜 사람들이었다. 흑인이나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떨어져 살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미국에서는 빈곤층이 모여 사는 판자촌이, 싱가포르에선 외국인 노동자 기숙사가 각각 감염의 온상이 된 게 그래서다. 보다 근본적인 처방은 행복한 삶이 가능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그런 공간 복지를 위해 국가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거리 두기가 가능한 적절한 공간에 사는 게 이후 사회 관습으로 착근할 필요도 있다.
최=변해갈 것이다. 이번에 발견하지 않았나. 회사나 학교에 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걸 말이다. 앞으로 그렇게 바뀌리라는 건 분명하다. 이건 각자 개인 공간이 확보돼야 한다는 뜻이다. 가령 대학 교수한테 카페가 강의실을 대체하기는 어렵다. 공간의 재배치가 수반될 것 같다. 공용 공간이 줄고 사적 공간이 많아지는 방향의 복지 정책을 기대한다.
김=미국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자서전에서 털어놓은 이야기가 있다. 프린스턴대가 그를 모셔가려 공을 들였는데도 기어코 그가 캘리포니아 공대로 간 건 학생들과 대화해야 강의가 된다는 신념에서였다. 파인만뿐 아니다. 늘 재택 근무만 할 수는 없다. 지속적인 고립은 바람직하지 않다. 밖에 나와 사람도 만나고 그래야 한다.
-접촉을 기피하는 ‘언택트(Untact)’ 문화는 대세가 될까.
김=도전 과제가 바로 현실이 되는 법은 없다. 현실로 만드는 건 정치적 결정이다. 강력한 국가가 들어설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됐다. 자칫하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같은 국가가 등장할 수 있다. 말하자면 전체주의이되 ‘좋은 전체주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있는 전체주의’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자와 전문가가 자기들이 연구한 적절한 시나리오를 보여줘야 하고, 정치가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 그런 프로그램을 갖고 정치를 해야 한다.
-통제하는 국가를 받아들이되, 그 통제에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뜻인가.
김=통제에는 3가지가 있다. 양 극단인 민주주의 투표와 엘리트 독재, 그리고 둘을 절충한 형태다. 통제를 하되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시나리오에 기반한 통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1991년 넬슨 만델라가 출소하자 남아공의 흑백 갈등이 폭발 직전까지 치달았다. 그때 20여개 정파 대표들이 몽플레 콘퍼런스 센터에 모여 토론을 시작했다. 진영 내부, 진영 간 토론을 반복한 끝에 4가지 시나리오를 내놨고, 이걸 국민들에게 공개해 숙고하게 했다. 최종 투표에서 남아공 국민은 좌파 포퓰리즘 성격이 짙은 만델라의 ‘이카루스’ 시나리오를 골랐지만, 토론과 논의 과정을 거친 만델라는 4개 시나리오를 종합한 방안을 시행하면서 갈등 상황에서 벗어났다. 공동의 거대한 도전거리가 생긴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 같다.
김=그렇다. 한국뿐 아니라 국제 연합 기구 차원의 세계적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최=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의 토론 문화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토론이라면 논쟁 끝에 결론 내는 것만 생각한다. 토론의 효과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토론 과정을 통해 논의의 수준이 올라간다는 게 더 큰 효과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 자체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생각하고 토론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것 같다. 결론이 무엇이든, 이 사태를 수습한 경험을 공유하고 토론 했으면 좋겠다.
김=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도 그렇다. 하원을 통과한 뒤 상원에서 막혔는데,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는 게 의회의 주장이었다. 탄핵안이 통과되든 안 되든, 탄핵 문제를 두고 토론하는 과정 자체가 정치적 의식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면 좋겠다는 기대감이었다.
-‘뉴 노멀’이란 말이 회자된다. 새로운 기준은 뭘까.
최=전적으로 동의하는 예측 중 하나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리라는 얘기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중심이 이동하리라는 건 자명하다. 사람들은 이미 디지털에 익숙해진 상태다. 문제는 정부다. 미적대면 안 된다. 세계가 우리를 다시 보고 있다. 창의적 방역이었다는 칭송까지 들린다. ‘드라이브 스루’ 진단이 대표적이다.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지금껏 자학이 무색할 정도다. 5G(세대) 통신 정도에 그칠 게 아니라 ‘디지털 경제’의 세계 표준을 선도할 수 있게끔 사회 시스템을 확 바꿔나가는 작업을 공격적으로 한 번 시작해보면 어떨까. 경제를 잘 모르지만 기회라는 느낌이다.
김=우리에게 필요한 건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욕망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다. ‘인간’이라는 기준에서 1등 국가가 돼야 한다.
-국가의 귀환, 그것도 강력한 국가의 귀환을 점치는 이들이 많다.
김=위기 극복을 위한 시나리오의 구상이나 실현을 국가가 주도하더라도, 그 시나리오는 결국 인간을 위한 거여야 한다. 위기 대응은 일정 정도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띨 수 있지만, 그 또한 다른 나라를 누르겠다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최고’보다 ‘모범’ 국가가 돼야 한다. 인간의 행복에 집중할 때 민족주의 또한 세계주의가 될 수 있다.
최=우리 인류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체격도, 두뇌 용량도 더 컸을 네안데르탈인을 어떻게 물리쳤을까. 내 생각엔 호모 사피엔스만 성공한 게 하나 있어서다. 수백, 수천의 낯선 사람과 어울려 사는 ‘거대 익명 사회’ 건설이다. 낯선 사람만 바글대는 서울역 대합실에 걸어 들어가는 행동을 침팬지는 결코 할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의 충격이 아무리 크다 해도 이런 진화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까. 우리는 결국 다시 모이게 되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혐오의 문제가 있다. 코로나19 위기는 우리끼리 똘똘 뭉치자는 경향을 어느 정도 강화할 수밖에 없다. 두 가지가 어떻게 섞여 나타날지는 궁금하다.
-서구 문명의 한계가 노출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동양과 서양을 나누고 우열을 가르는 사고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개인 윤리는 아직 우리가 서양을 못 따라가는 듯하다. 서양인은 자기가 옳다 여기는 건 누가 뭐라 하든 기어코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다 자율적이고 자발적이다. 그들은 ‘하느님과 직통 전화를 한다’고 표현한다. 양심에 물어본다는 의미다. 이런 전통이 그들로 하여금 자가 격리를 인권 제한으로 여기게 만드는 바람에 서구의 대처가 미흡했을 수 있다. 하지만 양심에 따라 살려고 하는 것, 그게 수준 높은 사회인 건 변하지 않는다.
최=이런 일 하나로 동ㆍ서양을 비교하는 건 성급하다. 다만 사대주의적 사고가 약간은 희미해질 듯하다. 그간 우리는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스스로를 너무 낮추고 살았다. 모든 기준이 서양이었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우리도 노력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어느 정도 생긴 듯하다.
-앞으로 우리 정부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면.
최=20세기 말 특히 많이 쓰였던 개념이 ‘전환’(turn)이다. 당시 일본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가서 21세기에는 ‘생태적 전환’이 필요하다 호소했다. 우리 존재 자체가 위협 받는데, 다른 전환이 무슨 소용이냐 했다. 요즘 그 때가 다시 기억난다. 이제 실제로 행동에 나설 때다. 요즘 내가 만든 ‘생명다양성재단’에 기업들이 연락을 해온다. 생태 활동을 경영의 중심에 두는 기업이 생길 것 같다. 친환경은 이제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팬데믹을 막는 생존의 문제가 됐다.
김=진보니 진화니 하는 개념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 주어진 현실과 보편적 가치를 숙고했으면 좋겠다. 정부는 전문가들에게 자문해 현 상황에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 동시에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탄탄한 시나리오를 그려내야 한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임수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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