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방사광가속기는 1994년 12월 7일 경북 포항공대 캠퍼스 내 준공됐다. 포항방사광가속기와 같은 ‘제3세대형’ 보유국은 당시 미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대만 등 4개국에 불과했을 때다.
방사광가속기는 1987년 고 김호길 포항공대 초대 총장의 제안으로 비롯됐다. 물리학자이자 가속기 전문가인 그는 포항공대를 세울 당시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에게 가속기 필요성을 설명했다. 건설 비용만 1,500억원이 예상되자 포항제철 내부는 물론 학계까지 무리한 사업이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김호길 총장은 “실패하더라도 쓰라린 경험이 있어야 한국의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다”고 꿋꿋하게 맞섰고, 박 회장은 부지와 함께 건설비용 864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3세대 방사광가속기는 9개월의 시운전을 거쳐 1995년 9월 본격 운용에 들어갔다.
삼성전자 휴대폰 신화도 가속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1999년 삼성전자는 휴대폰의 높은 불량률 때문에 고민하다 가속기연구소를 찾았고 ‘비파괴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반도체 소자 기준축의 뒤틀림 현상과 납땜 불순물을 찾아냈고, 불량률을 70%에서 10%로 낮췄다.
2015년에는 총 사업비 4,260억원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준공됐다. 정부가 추진하는 이번 차세대 방사광가속기는 기존 3세대 보다 빛의 밝기가 100배 이상 높다. 실험공간인 빔라인이 적은 4세대와 달리 원형으로 설계돼 40개가 넘는 실험이 동시에 가능하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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