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명이 희생된 경기 이천시 물류창고 화재는 ‘인재(人災)’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에 노동계는 안전관리를 소홀히 해 사망사고를 야기한 사업주를 형사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을 제정할 것을 한 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매년 일터에서 스러지는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2,000명에 이르는 만큼 경영자의 책임을 강제하고 재발을 방지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노동절 기념대회를 열고 “사망사고가 반복되지 않는 가장 빠른 길은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을 제정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2008년 40명이 사망한 이천 냉동창고 화재 참사를 언급하며 “12년 전처럼 원청에 고작 2,000만원의 벌금만 주어지는 등 원청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처참한 희생이 따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역시 성명을 통해 “이번 참사에서 보듯이 산재사망사고에 대해서는 기업에 철저히 그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은 2017년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중대재해 발생시 처분이 중간관리자에 가벼운 형사처벌을 내리는 것에 그치고 정작 사업주나 정부의 형사책임을 묻는 경우가 드물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법인이 안전 및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사상자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하고 해당 법인에 벌금 부과 △사업장이나 공중이용시설 감독 의무가 있는 공무원의 직무 유기로 사상자가 발생한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상 3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법안 심사는진척 없이 3년째 계류 중이다.
노동계는 하루 빨리 법을 제정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화재 원인 수사가 진행 중이나 이미 발주사와 시공사가 산업안전보건공단의 화재 위험 주의를 수차례 받고도 안전조치를 하지 않았고, 노동자들에게 안전교육을 하지 않았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대 국회 종료 한 달을 앞둔 터라 이대로라면 법안은 자동 폐기수순을 밟게 된다. 법 제정을 위해선 다음 국회에서 새로 발의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나아가 올해 1월부터 실시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일명 김용균법)에 안전책임을 소홀히 한 경영책임자 형사처벌 하한선(징역 1년) 제정 목소리도 다시 커지고 있다. 개정 산안법은 산업 재해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있지만,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업주 처벌의 하한형이 도입되지 않으면서 역시 ‘경고메시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권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은 “2008년 화재나 이번 화재 모두 값싼 재료를 써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더 많이 내기 위한 욕심에서 비롯됐지만 기업주를 피해가는 처벌 때문에 이런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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