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인 석굴암은 ‘한국의 판테온’이다. 괜한 비유가 아니다. 석굴암은 로마의 판테온처럼 직경 6.7m의 원이 들어가는 서양식 기하학적 구조로 지어졌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 구조와는 사뭇 다른 석굴암은 통일신라 시대에 서양 건축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통일신라는 인도, 페르시아, 유럽 등 해외와 문화교류가 활발했다.
근대 건축에서는 상황이 뒤바뀐다. 근대 건축의 두 거장인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와 르 코르뷔지에(1887~1965)의 건축에서 동양 건축 특성을 찾아볼 수 있다. 둘은 벽체 중심이던 서양 건축의 흐름을 안팎의 경계가 모호하게 흐르는 동양적 공간으로 바꿔 놨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판스워스 하우스’는 기둥식 구조에 집을 올린 뒤 사방으로 유리창을 뚫어 뒀다. 지붕이 덮고 있지만 앞뒤로 뚫린 대청마루가 있는 한옥 같다.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에 처음 도입했던 필로티(1층에 벽 없이 기둥만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올리는 구조)는 우리나라 원두막과 빼닮았다. 기둥을 받쳐 살짝 띄운 듯한 ‘돔이노(Dom-ino) 구조’도 주춧돌이 있는 한옥과 비슷하다. 석굴암과 판테온, 필로티와 한옥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필연적이다. 서로 다른 기후와 지리적 조건에 맞춰 제 각각 진화해 온 두 문화가 교통통신의 발달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문화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기술 발달은 동떨어진 분야끼리의 융합도 가능하게 한다. 자동차나 비행기 제작 기술을 처음으로 건축에 적용해 구겐하임 빌바오미술관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 반지를 디자인할 때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라이노’를 이용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 등이 대표적이다.
공간이 만든 공간
유현준 지음
을유문화사 발행ㆍ408쪽ㆍ1만6,500원
건축을 중심으로 과학과 문학, 역사, 환경 등을 두루 살핀 이 책의 첫 머리는 영감에서 시작된다. 건축으로 세상을 조망하고 사유하는 인문 건축가인 저자는 “인간과 기계의 융합,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 실제와 가상의 융합이 절실한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의 차원을 뛰어넘는 새로운 생각”이라 말했다. 삶의 공간을 찌그러진 캔처럼 압축시켜 버린 코로나19 사태를 돌이키게 하는 책의 끝에서 저자는 “창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인간다움의 정의를 찾는 것이다.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창조적 영감은 갈등을 화합으로 이끌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답한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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