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133)] 뉴칼레도니아 자유여행 4편- 본섬 2
☞뿌리다와 탕탕 부부의 지난해 12월 뉴칼레도니아 여행기입니다. ‘결정적 한 방이 없다… 2% 부족한 뉴칼레도니아 여행’ 에서 이어집니다.
뉴칼레도니아 본섬의 북쪽 끝을 찍고 동쪽으로 내려와 서쪽으로 길을 잡았다. 뭔가 부족하다고 여겨졌던 그간의 실망이 기대로 치환되며 맛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역시 여행은 언제나 예상 밖이다.
◇Day 5 해안도로의 변주를 찬양하라
북쪽 도시 쿠막에선 여행자에게 두 가지 선택권이 놓인다. 본섬의 북쪽 끝인 품(Poum)에 들르느냐, 아니면 동쪽 푸에보(Puebo)로 바로 핸들을 꺾느냐. 품에서 푸에보로 직행하는 길은 없다. 깊은 산 속이다. 즉, 품에서 푸에보로 가려면 다시 원위치인 쿠막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기름값도 시간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고민을 알고 있다는 듯, 숙소 주인 제롬이 한마디 던진다.
“품에 가면 끝내주는 레스토랑이 있어. 단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어. 외식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불만이 있다면 메뉴가 자주 바뀌지 않는다는 것 뿐.”
저녁 식사도 마쳤을 야밤에 호리호리한 체격의 제롬이 입맛을 다셨다. 여행의 재미 중 하나인 ‘미식’을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게 사실이었다. 보통 낮에는 과일이나 과자로 연명했던 터, 다음 날 기대를 안고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시선과 손이 슬슬 차창 밖으로 이동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원시적인 풍경 덕이다. 저건 뭐지, 저길 좀 봐. 총을 쏘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크고 작은 나무의 변주와 뾰족하고 작은 산이 어깨를 겹치며 리듬을 탔다. 신선한 공기가 사람과 사람 사이까지 파고 들어 숨쉬기도 상쾌하다. 어쩌다 들어간 작은 마을엔 유머가 있었다. 마을의 수호신인 장승이 ‘메롱’하듯 반기고, 갓 잡은 바닷가재를 흔들며 흥정하는 사내를 만났다. 그나저나 평일 대낮에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답은 맛집에 있었다. 제롬이 추천한 ‘흘레 데 뿌앙감(Relais de Poingam)’이다. 해안 도시 품에서 비포장도로로 더 들어가야 나타나는 땅끝의 끝에 바다 전망을 독차지한 방갈로 겸 레스토랑이 있다. 야외 테라스는 만석이었다. 돌로 만든 커다란 상에 둘러앉은 사람들 표정에도, 음식에도 생기가 돌았다.
빼빼 마른 사내가 전채 요리와 메인, 그리고 디저트로 구분된 단출한 메뉴판을 선보인다. 아직까지 구경해 보지 못한 해산물 요리를 콕 찍었다. 잠시 후 점원이 양이 많을 거라며 경고를 했던 바닷가재가 우리 앞에 놓였다. 불꽃나무(봉황목)의 꽃이 만개한 그라탱이다. 한 입 떠서 맛을 봤다. 프랑스식 표현대로라면 “Le petit jesus en culotte de velours!”다. 직역하면 ‘벨벳 팬티 속에 작은 예수가 있다’인데, 최고를 뜻하는 짓궂은 농담이다.
치즈에 퐁당 빠진 바닷가재가 쭉쭉 찢어지는 쫄깃한 치즈 사이에서 탱탱한 식감을 자랑한다. 염치 따윈 잊었다. 접시 바닥까지 싹싹 핥아먹었다. 곁에서 새가 짹짹거린다. 공식적으로 이 나라가 자랑하는 116종의 조류 중 하나로, 손바닥보다 작은 핀치(finch)다. 새는 노래하고 바다는 호수 같다. 포족함에 취해 잡념 없는 시간을 오래 보냈다.
나른한 기분으로 쉬엄쉬엄 달렸다. 북부 동해안 도시 이엥겐(Hienghène)에 가까워지면서 주변의 삼림이 암석으로 변해 있었다. 도로는 굽이굽이 산을 타다 작은 이벤트를 준비한다. 길이 끊기고, 동강 난 육지를 차량을 실은 선박이 연결한다. 강을 건너면 도로는 해안을 옆구리에 끼고 달린다. 바다 내음이 코끝을 찌르고, 기암절벽은 더욱 신비로운 자태를 뽐낸다. 더 나아가기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선착장 앞에 숙소가 보였다.
◇Day 6 바람의 길을 따라 중간 마무리
지식이 전무해도 석회암으로 이뤄진 작은 섬들이 이엥겐을 돋보이게 한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이제껏 흘려 보내던 덤덤한 푸른 자연이 입체적인 형태를 갖춘 암석으로 대치돼 눈길을 잡는다.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이들은 몇몇 작은 섬을 ‘알을 품은 닭’ ‘스핑크스’ 등으로 명명하고, 뉴칼레도니아 최고봉(1,628m)인 파이네 산과 대치된 호수를 조망 포인트로 두고 있다.
이엔겐은 역사적 자부심도 있는 곳이다. 멜라네시아 원주민인 카낙인의 정신적 지주 장 마리 치바우가 시장을 역임한 도시다. 카낙인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지만, 의견을 달리하는 동족에 의해 암살된 지도자다. 뉴칼레도니아는 여전히 프랑스령에 머물 것인가, 독립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수도 누메아로부터 멀어질수록 카낙 국기가 팔랑거리고, 독립을 외치는 그라피티가 선명하다. 2018년 시행된 투표에선 주민의 57%가 프랑스령으로 남기를 원했지만, 2022년까지 아직 두 번의 선거가 남아 있다. 나라의 정체성이 바뀔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엥겐에서 포엥디미에(Poindimié)를 지나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뉴칼레도니아의 ‘배꼽이 되는 길(Route du Col des Roussettes)’이다. 지역의 대표 과일인 리치를 씹으며 창밖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화를 감상했다. 바람이 조율하는 길은 푸르다가 붉어지고, 봄이었다가 금새 가을로 변한다. 푸른 호수가 숲에 숨었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트레킹을 원한다면, 라포아 인근의 큰양치식물공원(Parc des Grandes Fougères)에 들러도 좋다.
그러고 보니 섬에 와서 물장구 한 번 제대로 못했다. 본섬의 남쪽은 숙제처럼 미뤄 두었다. 일단 뉴칼레도니아 하면 떠오르는 그 바다를 아직 보지 못했으니까. 내일은 일데팡으로 날아간다.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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