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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이탈리아, 가리봉동, 원곡동의 추억

입력
2020.05.01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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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리봉동 중국동포타운.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가리봉동 중국동포타운. 한국일보 자료사진

나는 꽤 오랫동안 이탈리아에 살았다. 그 나라의 이방인으로 말이다. 당시 한국의 위상은 요즘과 차이가 컸다. 월드컵도 열리기 전이었으니까. 오히려 북한을 더 잘 알았다. 수교국이기도 했고, 런던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통한의 패배를 당한 나라가 북한이었다. 로마에 살 때는 빅토리아 시장에 자주 갔다. 온갖 나라의 이민자들이 모여드는 시장이었다. 그곳은 역시 이방인인 내겐 편한 곳이었다. 손으로 먹는 밥을 파는 서남아시아 식당, 엄청나게 싼 중국 식당, 희귀한 아프리카 식당의 단골이었다. 그야말로 그곳은 ‘제3세계’였다. 이국에서 생존하기 위해 버티는 노동자들이 모이는 식당이었다. 나 역시 그런 존재였으므로 공감대가 컸다.

그곳에서 나는 ‘차별’받지 않았다. 그 습관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어졌다. 가리봉동이 당시 내가 자주 가던 곳이었다. 피곤한 식당생활이 쉬는 날, 가리봉동 시장에 갔다. 유하 시인은 압구정동에 갔다고 읊었지만, 가리봉동은 다른 의미의 현장이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퍼진 양꼬치집이 막 생기던 그런 이국적 공간이었다. 한국화된 중화요리가 아니라, 본토의 요리를 팔았다. 이주 노동자들이 늘면서 대림동까지 상권이 넓어졌다. 상권이자 그들의 생활권이었다. 우리 동포인 조선족 말고 한족의 유입이 크게 늘기 시작하면서 권역 자체가 커졌다. 아마도 내가 그곳에 가는 이유는 중국의 서민 요리를 언제든 먹을 수 있으며, 요리사로서 색다른 재료를 살 수 있다는 데 있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방인의 삶에 대한 경험이 작동하지 않았나 싶다. 이탈리아에서 내가 그랬듯이. 그들을 동정한다기보다,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안 그래도 그들은 차별과 오해에 민감했다. 코로나사태가 터지면서 그 고통은 증폭됐다. 더구나 대림동 상권은 망해가고 있었다. 한국의 힘들고 저임금이며 육체노동의 상당수가 이들이 짊어지고 있다. ‘노가다’라고 부르는 건설 현장의 잡역, 식당의 서빙과 요리, 온갖 농축수산물 생산… 한국인이 안 하므로 누군가는 해야 할 일들을 그들이 하고 있다. 그것이 그들을 차별할 어떤 이유가 되는가.

며칠 전에는 원곡동에 다녀왔다. 중국계 중심의 대림동과 달리 이곳은 이른바 다문화다. 한 휴대폰 가게는 이렇게 구인 광고를 붙여놓고 있었다.

“필리핀, 태국, 몽골, 베트남 직원 구함.”

아시아의 거의 모든 인종이 모여 살고, 시장에서 장사하여 음식을 사 먹는다. 코로나 충격에도 시장은 마침 활기를 띠고 있었다. 원곡동이 소속된 안산은 거대한 산업단지다. 그들의 노동력은 절대적이다. 한 광고 전단이 눈에 띈다.

“비계공, 거푸집 구함. 월급 많음. 동포는 F4 비자 나옴.”

한국인이 기피하는, 힘들고 위험한 일을 이들이 지탱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젊은 이국의 노동자들이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데이트하고 있다. 마트에서는 다른 도시에서는 다루지 않는 물건을 판다. 커리와 쌀국수와 중국 셴빙(지진 호떡)과 우즈베키스탄 만두와 인도네시아 볶음밥이 팔리는 땅이었다. 이들이 다치지 않고, 혐오나 차별의 대상이 되지 않고, 무사히 원하는 것을 얻길 빌었다. 우리들의 이웃으로 사람들이 인정해주길 바랐다. 마침 따스한 날이었다. 손으로 뽑는 중국식 수타면을 한 그릇 사 먹었다. 젊은 중국인 청년이 면을 멋지게 뽑았다. 이탈리아에서 살던 시절의 내가 저랬겠지. 그의 안녕을 빌었다. 수타면 맛은 아주 좋았다. 멀리 여행도 못 가는 시절, 이국의 산물과 요리가 있는 이곳 여행은 괜찮았다.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원곡동행 짧은 여행이었다. 그들도 마스크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안산은 한동안 확진자 제로의 코로나 청정지대였다. 다음에는 허브가 듬뿍 든 본토식 베트남 쌀국수에 인도네시아 볶음밥을 먹어야겠다.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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