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끝나고 2주일이 지났지만 어떤 이들에게 선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일부 유튜브에서 제기하고 있는 부정선거 의혹이 확산되고 정치인들이 확대 재생산하며 소란은 점차 커지고 있다. 엊그제는 법원이 한 낙선자가 제출한 투표함과 투표지 등에 대한 증거보전신청을 일부 받아들이며 본격적인 소송전으로까지 이어지는 형국이다.
여러 형태로 제기되는 선거부정 음모론은 소수지만 일정한 수의 확신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 15일의 선거에 부정 행위가 있었다는 믿음이 아주 강한 이들은 의혹의 논리를 허물어뜨리는 반증이 나와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유튜브 채널에서 열리는 선거부정 관련 토론에 출연하는 확신자들이 그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우체국 직원이 매수됐으며 심지어 패배한 정당 쪽의 선거 참관인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며 선거의 모든 과정에 의혹 제기가 가능하다는 태세다.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 유튜브 화면 바로 옆 창에는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수많은 댓글이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 같은 확신자들의 상태는 심리학에서 잘 알려진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현상으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1950년대에 제시한 이 개념은 사람이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를 접했을 때 느끼는 불편하고 괴로운 상태를 일컫는다. 인지부조화 현상을 경험했을 때 인간은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이는 대체로 자신의 기존 신념을 정당화하는 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선거 패배 이후, 특히 근소한 차이로 떨어진 낙선자와 그 지지자들은 당장 인지부조화를 느끼기 마련이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실이 괴로워 어쩔 수 없다. 질 수 없다고 생각한 선거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실제로는 선거에서 이긴 것이 아닐까.
인지부조화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식이 가능하다. 먼저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찾아 나선다. 개표 중반까지 계속 앞서던 우리 후보가 사전투표함을 열고 난 뒤 급속히 역전당해 결국에는 패배하고 말았다. 사전투표가 이상하다. 지역구 밖에서 투표한 용지들을 옮기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을 것 같은데 투표함 이동을 맡은 우체국이 감시카메라 공개 요구를 거부한다. 우체국이 매수됐다! 두 번째는 내 주장에 반하는 사실은 의심하거나 무시하는 방식이다. 투표함이 있는 공간에 불이 켜져 있고 감시카메라가 있어 부정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어떻게든 조작은 가능할 거야! 확증 편향의 두 가지 형식이다.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내 입장을 합리화하는 쪽으로 모든 정보를 해석한다. 과학이고 상식이고 다 필요 없다.
페스팅거는 종말론을 믿는 종교집단이 약속된 지구 종말의 날이 지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극심한 부조화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도 연구한 바 있다. 미국 시카고의 한 종말론 집단에 잠입해 들어가 관찰한 이 연구에서 약속된 날짜 이후에도 여전히 예언을 믿는 확신자들에게서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됐다. 이들은 대체로 약속의 날 이전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행위를 자행했으며, 종말의 날 이후에는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지를 끌어내면서 계속 확신자로 남았다고 한다. 약속된 승리의 날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는 확신자들은 선거운동 기간 혐오나 막말과 같은 되돌릴 수 없는 행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 패배의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부정선거에 대한 음모론을 주고받으며 소규모나마 사회적 지지를 끌어내고 확인하려 들 것이다. 그리고 일부 낙선자들은 이들의 확신과 과격한 행동을 밑천 삼아 가냘프게 남아 있는 정치 생명의 끈을 이어 나가려고 할 것이다.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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