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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환자인지 알 수 없던 2월의 대구…원망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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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환자인지 알 수 없던 2월의 대구…원망조차 할 수 없었다”

입력
2020.04.2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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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파견 근무하다 신종 코로나 확진된 김기숙 간호사 

 밀려드는 신천지 의심환자 통제 불능 선별진료소는 ‘바이러스’ 온상 

 의료진 탈의 장소조차 없어 야외에서 환자와 섞여 보호복 탈의 

 사태 초기라 원망하지 않지만 방역당국 의료진 감염 예방 노력 필요 

지난 2월말 대구 남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료지원 근무 중 신종 코로나에 감염돼 서울대병원에서 격리치료를 받고 이달 16일 직장인 국립교통재활병원에 복귀한 김기숙 간호사(사진 오른쪽)가 환한 얼굴로 근무하고 있다. 국립교통재활병원 제공
지난 2월말 대구 남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료지원 근무 중 신종 코로나에 감염돼 서울대병원에서 격리치료를 받고 이달 16일 직장인 국립교통재활병원에 복귀한 김기숙 간호사(사진 오른쪽)가 환한 얼굴로 근무하고 있다. 국립교통재활병원 제공

“현장에 도착하니 그야말로 전쟁터였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여부를 확인하려 몰려드는 의심환자들 앞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깜깜했습니다.”

정부가 감염병 위기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상향했던 지난 2월 23일. 김기숙(50) 국립교통재활병원(경기 양평군 소재) 간호사는 신종 코로나 폭증의 진앙인 신천지 대구교회와 인접한 남구 보건소에서 파견 근무 중이었다. 그의 주 업무는 선별진료소에서 확진 검사를 위해 보건소를 찾은 유증상자들을 맞는 일. 결국 격무에 시달리던 김 간호사는 지난달 1일 이곳에서 근무 중 확진 판정을 받았다. 선별진료의 최일선에서 신종 코로나에 감염된 3명의 의료인 중 한 명이 됐다. 확진 후 서울대병원 음압병실에서 19일간 격리치료를 받은 그는 다행히 완치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 기간을 보낸 후 이달 16일 병원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8일 전화로 만난 김 간호사는 신천지 신자 등 유증상자들로 붐볐던 선별진료소를 떠올리며 2월의 공포를 또박또박 끄집어 올렸다.

“당시 현장에서는 환자, 의료진, 공무원이 마구 섞여 동선 확보조차 불가능했어요. 의심환자 진료를 위해 보건소 야외 임시천막 아래 설치된 선별진료소도 사실상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죠. 천막 안에는 이동식 음압장치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어요.” 김 간호사가 기억한 남구 보건소 선별진료소는 시장통과 다름 아니었다. 누가 누구인지 가늠조차 안 되던 그때 환자 1명을 진료한 후 환기를 위해 10분간 천막을 비워야 하는 원칙은 지킬 수 없었다. 확진이 두려워 예민해진 사람들. 이들에게 ‘10분에 한 명씩 진료하겠다’고 말하며 가로막았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 있겠다는 공포가 앞섰다. 김 간호사와 공중보건의는 어쩔 수 없이 감염을 각오한 채 의심환자들을 맞아야 했다. 김 간호사는 “결국 선별진료소가 역으로 바이러스의 온상이 됐지만 당시에는 누굴 원망하거나, 탓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은 도처에 널려있었다. 교대시간이 돼 선별진료소를 빠져나온 그는 근무 때 착용했던 레벨(Level)D 보호복과 N95마스크, 고글 등 보호장비를 어디서 벗어야 할지조차 몰랐다. 의료진을 위한 별도 공간이 없어 야외에서 보호복을 탈의해야 했다. 의심환자들의 행렬, 그 옆에서 보호복을 벗는 의료진. 진풍경이었다. “보호복은 반드시 일반인과 차단된 공간에서 거울로 모습을 바라보며 탈의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으면서 문제가 된 것 같아요.” 김 간호사가 생각하는 감염 원인이다.

땀을 많이 흘린 채 야외에서 보호복을 갈아입은 날(2월 29일), 김 간호사는 잔기침을 시작했다고 한다. 저녁부터 근육통을 동반한 몸살이 시작됐다. “태어나 이렇게 몸살을 심하게 앓은 적이 없어요. 신종 코로나에 감염됐음을 직감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근무지였던 남구 보건소에서 신종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그날 오후 3시에 나온 결과는 ‘양성’이었다. 곧바로 서울로 이송된 그는 근육통 외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었지만 검사 때마다 바이러스가 나와 격리병실에서 20일 가까이 지내야 했다. 분함과 원망도 잠시 가졌지만, 김 간호사는 감염이 돼 2주간의 파견근무를 제대로 마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 환자를 돌보다 확진자가 됐던 김 간호사의 바램은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들의 안전이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100일을 넘기면서 확진자 수가 눈에 띄게 감소하는 등 상황이 좋아졌지만 언제 어디서 대규모 집단감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에 노출되지 않게 방역당국이 현장환경 개선과 의료진 교육에 만전을 기해주길 바랍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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