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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노추(老醜)

입력
2020.04.29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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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한때 잘 나간 부사장이었다. 그는 나이 70에 시니어인턴으로 재취업해 비서 겸 운전사로 일하지만 선한 경륜과 넓은 포용으로 젊은 여사장을 변화시킨다. (영화 ‘인턴’ 스틸)
그도 한때 잘 나간 부사장이었다. 그는 나이 70에 시니어인턴으로 재취업해 비서 겸 운전사로 일하지만 선한 경륜과 넓은 포용으로 젊은 여사장을 변화시킨다. (영화 ‘인턴’ 스틸)

며칠 전 지하철에서 목격한 일이다. 자리 양보를 둘러싸고 가끔 빚어지는 세대 간 다툼의 데자뷔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탔다. 중절모에 깔끔한 차림이셨다. 어르신은 자리에 앉자마자 기침을 했다. 순간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어르신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아랑곳하지 않고 또 기침을 했다. 급기야 주위의 사람들이 자리를 이동했다. 수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그 어르신. 다 들으라는 듯이 한 소리를 하셨다. 그것도 두 번이나.

“늙은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나 코로나 안 걸렸어. 요즘 젊은 것들 너무 예의가 없어.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른다니까.”

순간 어정쩡한 침묵이 흘렀다. 그때 구석진 곳에서 조용히 들려오는 한 마디. “늙어도 저렇게 늙지는 말아야지.”

나도 아직 자리 양보를 받을 만큼은 아니지만 늙어간다. 그 일갈이 종일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대한민국의 두 번째 광역시 시장님의 사퇴 회견 뉴스를 봤다. ‘5분 정도의 짧은 면담’에서 일흔두 살의 그분 손이 어떤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하긴 했나 보다. 울먹이기까지 하는 그분의 얼굴을 보며 낮의 일과 함께 머리에 스친 한 단어. 많은 사람들이 이 뉴스를 보며 그 단어를 토설했을 거다.

‘늙을 노(老)’자가 들어간 단어 중 좋은 의미를 가진 건 유감스럽게도 별로 없다. ‘노장(老將)’이나 ‘노련미(老鍊味)’처럼 관록의 의미로 확장된 거 말고 ‘老’ 자는 대개 부정적 접두사다. 그 중에 왠지 입에 올리기 가장 부끄럽고 혐오스러운 어감을 지닌 세 단어가 있다. ‘노욕(老慾)’, ‘노망(老妄)’, ‘노추(老醜)’다.

나이 든 기성세대를 욕보이는 표현이 유독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다. 사막에서 눈물밥 말아먹고 난닝구 빨던 아재들이, 워커홀릭과 열정페이를 당연한 걸로 알았던 아재들이, 왜 ‘꼰대’ ‘개저씨’ ‘꼴보수’ ‘라테는 말이야’로 조롱받아야 하는지 마음이 아프다.

잊혀지지도 않는다. 골프장 캐디의 그곳을 만지고 나서 “내가 딸만 둘이야. 딸만 보면 예뻐서 귀엽다고 하는 게 내 버릇이야. 그게 습관이 돼서 좀 귀엽다고 한 것이야”라고 말씀하신 전직 국회의장님. 76세이셨다. 하기사 그때는 ‘성인지감수성’이라는 어려운 말도 없었다.

아직도 세상이 바뀐 걸 몰라서일까. 아니면 인정하기 싫어서일까.

먼 옛날에도 공자님은, 예순은 누가 뭐라 해도 귀가 순한(耳順) 나이지만 고희(古稀)는 ‘종심(從心)’이라고 했다. 마음 가는 대로 해도 절대 법도를 넘지 않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다. 그 경지까진 가지 못하더라도 내가 아는 어느 어르신은 매일 아침 일어나면 부처의 “방하착(放下着, 다 내려놓거라)”을 세 번 외친다.

나이도 값이 있다. ‘나잇값’은 적어도 중장년 이상이 돼야 칭찬이든 조롱이든 적용된다. 사람들이 ‘어른’에 기대하는 게 있는 것이다. 나이야말로 누가 시키지 않은 최고의 스펙이니까. ‘노추’는 있어도 ‘청추(靑醜)’는 없다. 세상은 늙음의 추함에는 가중처벌을 내린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시간이 많아진 요즘, 다시 보고 역시나 좋았던 영화가 있다. 포스터에 ‘경륜은 결코 늙지 않는다(Experience never gets old)’라는 멋진 카피를 붙인 ‘인턴’(2015년)이라는 영화다. 큰 회사 부사장까지 지내고 은퇴한 로버트 드 니로가 70세에 온라인쇼핑 의류회사 시니어인턴으로 재취업해 30세 여사장을 비서로 모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대사에 또 찌릿해졌다. “손수건을 갖고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빌려주기 위해서야.” 호주머니에 두 장의 손수건이 필요한 나이가 있다. 한 장은 남 모르게 나의 눈물을 훔치기 위해, 한 장은 남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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