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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팬데믹으로 드러난 일본 정치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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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팬데믹으로 드러난 일본 정치의 과제

입력
2020.04.28 01:00
수정
2020.04.28 15:06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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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7일 중의원 본회의에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으로 참석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7일 중의원 본회의에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으로 참석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466억엔(약 5,000억원)에 달하는 세금 낭비다.”

최근 한 일본인 지인이 가구당 2매씩 지급한 ‘아베노마스크(아베의 마스크)’에 대해 토로한 불만이다. 처음엔 정부 방침의 진의까지 평가절하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지난주 마스크를 받아 보니 세계 3위 경제대국이 국민 건강을 위해 지급한 물건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마스크 지급 예산을 방호복을 구하지 못해 쓰레기봉지와 비옷을 입고 분투하는 의료진 지원에 사용해야 한다는 그의 지적을 수긍할 수 있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정책 홍보에 나선 듯 지난 한 달간 공식 석상에서 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반면 주변 각료들이 천 마스크를 쓴 모습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시중에서 품귀현상이 벌어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각료들이 솔선수범하지 않으니 국민들은 마스크를 손에 쥐어도 심드렁할 뿐이다.

일사불란함을 보여주지 못한 건 총리와 각료만이 아니다. 아베 총리가 국민들에게 외출 자제를 요청하는 동안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가 연예인들과 어울려 벚꽃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공개됐다.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오이타현 신사를 방문해 참배한 사실도 드러났다. 정치권에서는 “아베 총리의 아킬레스건”이라는 평가가 공공연하다.

부인의 행동이 공분을 사고 있는데 총리의 외출 자제 요청이 엄중하게 전달될 리 만무하다. 긴급사태 선언 후 “사람 간 접촉을 80% 줄여달라”는 아베 총리의 호소도 막연할 뿐이다. 전문가들은 서구의 ‘도시 봉쇄’ 수준은 돼야 달성할 수 있다고 하지만, 총리는 전면 봉쇄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긴급사태 선언 이후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외출 자제 요청의 책임을 슬쩍 떠넘기고 있다. 코로나19가 조기 진정되지 않으면 긴급사태 조항 불비를 빌미로 개헌론에 불을 지필 태세다.

국가 위기 상황을 놓고 총리가 정치적 득실에 몰두한 사이 국민들만 피로가 쌓이고 있다. 일부 지자체가 사회적 압력을 통한 휴업 유도를 위해 영업 중인 파친코 상호명을 공개하자 다음날 개점시간 전부터 수백미터의 장사진이 목격된 것은 한편의 블랙 코미디나 다름 없다.

위기 극복을 위한 리더십이 효과를 보려면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그래야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당분간의 불편을 견딜 수 있는 동력이 된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아베 총리의 언행과 국민들 반응에선 이 같은 일체감을 찾아볼 수 없다. 아베 총리가 장기집권하는 동안 관료사회가 ‘손타쿠(忖度ㆍ윗사람 마음을 헤아려 행동함)’에 안주하며 국민과의 소통을 외면했다는 방증이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더욱 도드라진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일본 정치의 과제다.

김회경 도쿄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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