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과학계·업계·시민단체 “공정 평가해야” 한목소리
입지조건 내세워 오창 유치 자신감
전국 2시간 접근, 수요자 집적, 지질 안정성 등 강점
“차세대 방사광가속기가 기술강국 달성이란 본래 설치 목적에 부합하려면 입지 선정 과정부터 투명해야 합니다.”
이수재 충북대 약대 제약학과 교수는 27일 “국가 연구시설 입지가 수요자 의견을 무시한 채 정치적 논리로 흔들리면 안 된다”며 이 같이 말했다. 방사광가속기를 실제 이용하는 과학자들과 산업계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역설한 것이다.
구조생물학 전문가인 그는 누구보다도 차세대 방사광가속기 필요성을 절감하는 연구자다. 그는 항체의약품 개발에 필요한 단백질 입체구조 연구를 위해 1년에 3~4차례 일본 효고현에 있는 방사광가속기를 찾는다. 경북 포항에 있는 국내 방사광가속기는 시설이 노후한데다 잦은 지진으로 인해 안정성이 크게 떨어진 탓이다. 그는 “새롭게 구축할 차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접근성, 안전성 면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거쳐 설치되길 국내 연구진은 고대하고 있다”고 했다.
총 사업비 1조원 규모의 대형 국책사업인 ‘차세대 방사광가속기’를 놓고 충북, 전남, 경북, 강원 간 유치 경쟁이 한창이다. 최대 6조원대 경제 효과가 기대되면서 지방자치단체별로 여론전에 총력을 쏟는 국면이다. 이 때문에 공정한 평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각계에서 분출하고 있다. 특히 4·15 총선을 전후로 유치전이 과열 양상으로 치닫자 시민단체와 학계, 관련 업계 등은 “정치적 입김은 철저히 배제돼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균형발전지방분권충북본부는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정치권 등은 부당한 개입과 영향력 행사를 중단하라”며 “국책사업은 매우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의해 합리적으로 결정돼야 모두가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치전에 나선 지자체들에겐 “과열 경쟁을 자제하고 성숙한 자세로 선의의 경쟁을 펼쳐 국책사업이 순조롭게 추진되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대전, 충남, 세종 등 3개 충청권 분권단체들도 26일 입장문을 내 정부의 평가지표를 일부 변경하려는 시도를 비판하고 정치권의 개입 중단을 촉구했다.
과학자들도 나섰다. 400여명의 연구자, 교수 등으로 구성된 충북과학기술포럼은 “과학선진국 달성을 위해 필요한 국가 연구시설은 철저히 국가기술 정책과 연결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입지가 결정돼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충북도는 이 같은 각계의 우려와 지적에 따라 과열 유치전을 최대한 자제한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평가지표에 맞춰 방사광가속기 후보지에 대한 타당성 논리 홍보와 정확한 자료 제공에 집중하고 있다.
충북이 내세운 부지는 청주시 청원구 오창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다. 이 단지의 절반인 53만9,000㎡에 둘레 800m의 원형 방사광가속기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곳은 방사광가속기 활용도가 높은 바이오헬스, 시스템반도체 업체와 연구기관이 즐비한 지역이다. 10km 거리에 국가 바이오단지인 오송생명과학단지가 있고, 대덕연구단지, 한국원자력연구소 등 기초과학 연구시설이 1시간 거리 안에 있다.
주변에 바이오기업 260개, 반도체기업 90개, 화학기업 650개가 몰려 있어 방사광가속기의 최대 수요처인 셈이다.
청주 오창은 전국 어디서나 2시간대 접근이 가능한 것도 큰 강점이다. 인근 KTX오송역을 기점으로 경부, 호남고속철도가 교차하고, 경부·중부·중부내륙·중앙고속도로 등 4개 고속도로망이 거미줄처럼 걸쳐 있다.
방사광가속기 부지 선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지질학적 안정성이다. 방사광가속기는 흔들림이 없어야 정확한 연구자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창은 환경평가와 지질조사 결과 단단한 화강암반이 넓게 분포해 있어 가장 안전한 지질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건설 기간을 단축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도 오창의 비교우위 사항이다. 이미 산업단지로 고시된 곳이어서 부지매입, 주민의견수렴, 환경영향평가 등 행정적 절차가 필요 없어 건설 기간을 2년 가량 앞당길 수 있다.
충북의 방사광가속기 유치 도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12년 전인 2008년 유치에 나섰으나 우수한 접근성과 지질 안정성에도 불구, 경북 포항에 밀린 적이 있다.
충북도와 청주시는 이번 차세대 방사광가속기 입지 결정을 앞두고 정치적 결정을 경계하고 있다.
허경재 충북도 신성장산업국장은 “충북은 10여년 전부터 지역 전략산업인 바이오, 반도체 산업을 키우기 위해 방사광가속기 유치를 부단히 준비해왔다”며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가 보장된다면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청주=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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