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 인터뷰 “코로나 통해 대구의 품격을 봐… 마스크 해외 지원은 국격에 부합”
정세균 국무총리는 “정말 유능한 총리가 되고 싶다. 국민들이 유능하다고 느끼도록 잘 하고 싶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기 마스크 수급을 놓고 우왕좌왕한 정부 인사들을 질책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좀 유능해지자’고 지적했다”고 했다.
부드러운 리더십의 대명사, ‘미스터 스마일’의 변신일까. 정 총리는 “그런 질책이 저답지 않은 모습이지만, 대한민국을 경영하는 데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온정과 포용력만 발휘할 순 없었다”고 했다.
정 총리는 올해 1월 ‘경제 총리’에 대한 열망을 안고 취임했지만, 곧바로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코로나 총리’의 역할에 집중했다. 코로나19가 안정 국면으로 접어든 지금, 정 총리는 전공 분야인 경제를 본격적으로 챙기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정 총리는 취임 100일(22일)을 계기로 25일 정부서울청사 접견실에서 진행한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방역에 집중하면서도 ‘경제를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한시도 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와 통합, 두 가지 화두를 앞으로 집중적으로 챙기겠다”고 했다. ‘경제 총리’의 첫 번째 과제로는 “코로나19 방역이 안정된 이후 강력한 내수 진작책 도입”을 꼽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나 온 100일을 돌아보신다면.
“많은 것을 배웠다. 대구의 품격을 봤고, 국민들로부터 연대와 협력을 배웠다. 위기 상황에서 공직자들은 더욱 빛났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큰 영웅’이라면, 보이지 않는 ‘작은 영웅’들이 공직사회엔 많다. 함께 기여할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가장 큰 고비는 뭐였나.
“대구ㆍ경북에서 신천지를 중심으로 환자가 급증했을 때다. 환자는 급증하는데 병실이 없었다. 감염병 환자가 곧바로 입원하지 못한다는 건 국가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마스크 수급 문제도 큰 스트레스였다.”
-공직자들을 질책한 적도 있나.
“가능하면 칭찬하고 격려하려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경영의 주요 책임자로서 온정과 포용력만 가질 순 없다. 꼭 필요할 땐 지적도 해야 한다. 마스크 문제가 그랬다. 대국민 소통이 잘 안 됐고, 해외 반출 차단도 제때 못했다. 관련 부처에 ‘좀 유능해지자’고 했다. 그래도 최대한 점잖게 말하려고 했다(웃음).”
-‘마스크 수급이 안정되면 한국전쟁 참전국, 미국, 일본 등에 마스크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정부에 지시하셨는데.
“대한민국은 높아진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기여를 해야 한다. 위상만 향유하면 존경 받을 수 없다. 여론조사를 해보니 국민 다수가 ‘국제사회와 마스크를 나눠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 수용도가 높은 쪽부터 천천히 시작해 안전 운항을 하려 한다. 아무리 좋은 일도 국민 정서와 동떨어져선 할 수 없다.”
-일본에 마스크를 지원할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있나.
“민감한 여론에 꼭 맞설 필요는 없다. 순리대로 하면 된다.”
-남은 난제는 등교 개학인데.
“기본적으로 등교 개학은 하는 게 옳다. 한국전쟁 중에도 천막교사를 설치하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코로나19는 금방, 완벽하게 끝나지 않는 특성이 있으므로, 어느 정도 감당 가능한 수준이 되면 등교 개학을 하는 게 좋다. 다음달 언제쯤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당장 등교 개학을 해도 전혀 문제없는 지역들이 있지만, 초중고 평준화 정책을 취하고 있는 만큼 같이 가야 한다.”
-코로나19 경제 대책인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놓고 당정이 ‘원보이스’를 내지 못했다.
“당정청이 70% 지급으로 합의했는데, 총선을 거치며 100% 지급을 여야가 공약으로 냈다. ‘기존의 것’을 말하는 행정과 ‘국민 약속’을 말하는 정치 사이에서 충돌이 있을 수 있다. 충돌이 적나라하게 국민에게 드러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지혜롭지 못하다.”
-여당의 100% 지급안에 강력 반대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거취 문제가 계속 오르내린다.
“재난지원금과 홍 부총리 거취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제가 여당과 기재부의 간극을 메워서 다 정리됐다. 기재부가 실무를 준비 중이고, 국회도 호응할 것이라 본다.”
-여권 열성 지지자들이 ‘정 총리 전재산 기부’를 요구하는데(정 총리는 고소득자가 재난지원금을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방식으로 재원 문제를 해결하자는 당정간 절충안이 청와대의 의중과 다른 것이라고 본 인사들에게 공격 받고 있다).
“기부 방안은 대통령께서 아이디어를 내고 당정청이 합의한 것이다. 원하는 사람이 기부한다는 것이므로 계속 문제 될 것이라 보지 않는다. 재난지원금이 집행되면 취지가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을 감수하면서 당정 갈등의 ‘해결사’로 나선 이유는.
“불필요한 갈등이 지속되는 건 생산적이지 않다. 총리가 구경만 하는 건 직무유기다.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해서 사회가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총리 역할이다.”
-코로나19 경제대책이 부채질할 재정건전성 우려를 해소할 복안은.
“이론상으론 국가 채무 비율이 낮은 것이 좋겠지만, 꼭 필요할 빚을 져서라도 돈을 써야 한다. 지금이 그 때다. 국제통화기금(IMF) 등도 한국에 재정 확장을 권고하고 있다. 위기 극복에 일단 최선을 다하고, 재전건전성은 이후 다양한 노력을 통해 개선할 문제다.”
-코로나19 때문에 ‘경제 총리’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보여 줄 기회가 없었는데.
“‘경제를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늘 한다. 방역에 쏟았던 역량을 경제 쪽으로 돌릴 때라는 생각이다. 당장의 최대 과제는 악화된 민생을 챙기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상당한 고전이 예상되는 수출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내수를 활성화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되면 국내 관광 활성화를 포함해 강력한 내수 진작책을 내겠다.
경제만큼 중요한 것이 통합이다. 당장의 위기 극복을 위해서도, 대한민국 역량 강화를 위해서도 통합이 중요하다.”
-정치인으로서 분권형 개헌 필요성을 줄곧 말씀하셨다. 개헌선에 근접한 슈퍼 여당 탄생으로 환경이 조성된 것 아닌가.
“기본적으로 개헌은 국회의 몫이다. 개헌에 대한 열정이 있었지만, 지금 저는 행정 책임자다. 개헌에 대한 고민은 국회에서 충분히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방역과 경제 쪽의 노력을 더 하겠다. 개헌은 앞으로 1년이 골든타임이다. 다만 여당이 일방통행식 개헌을 추진해선 안 되고, 여야가 합의를 해서 진행하는 것이 옳다.”
-총선에서 슈퍼 여당을 만들어 준 국민의 뜻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이번 총선 결과는 과거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주문이다. 나중에 핑계를 대지 못하도록 국민들이 정부여당을 확실하게 밀어 준 것이다. 그럼에도 여당은 과욕을 부려선 안 된다. 경중완급을 잘 가리고, 무엇보다 국민들을 제대로 섬겨야 한다. 자기중심적이어선 안 된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정운영에 더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단 목소리와 통합ㆍ화합에 집중해야 한다는 견해가 여권에서 엇갈린다. 여당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있는데.
“경쟁이 없으면 발전이 없고, 경쟁 이후에도 과거에 머무른다면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선의의 경쟁을 하고, 결과에 승복하고, 힘을 모아 공동의 과제를 해결해야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
-청와대가 정권 하반기 내각 개편을 앞두고 있다. 인사에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가.
“인사권은 대통령께 있다. 다만 헌법상 총리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 그런 역할을 게을리 하진 않겠다. 헌법이 정한 총리의 역할(국무위원 제청ㆍ해임 권한 등)에 충실하겠다.”
-국회 인사청문회 때 약속한 대로 대통령께 ‘직언’도 하시나.
“직언이라 할 만한 이야기를 아직은 드린 적 없다. 제안을 하면 대통령께서 경청해주시고, 수용해 주신다. 제가 새로 시작한 만큼, 자상하게 많은 배려를 해주신다.”
-대선 레이스를 앞두고 전임자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함께 언급되는 일이 많은데.
“이 전 총리가 총리로서 아주 잘 하셨다. 함께 손 잡고 국민들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 국민들께 힘이 돼 드리는 것이 아주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정세균 총리’를 어떤 총리로 평가한다고 보나.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조금 이르지만, 총리 이후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구상은.
“낙제점은 아니지 않을까(웃음). 안정감은 있다고 보시는 것 같다. 그러나 안정감만 갖고는 안 된다. 유능해야 한다. 정말 유능한 총리가 되고 싶다. 지금은 제가 원래 표방했던 통합 총리, 경제 총리로 남는 것이 목표다.”
인터뷰=최문선 정치부장 moonsun@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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