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띄우고 라텍스 장갑 나눠주고
응시생들 “지금이라도 시행돼 다행”
“거기 학생 앞으로 더 오지 말고 청테이프 선 뒤로 서주세요.”
26일 오전 9시 영어능력 평가시험 토익(TOEIC)이 열린 서울 성북구 삼선중학교. 응시생 30여명이 시험장 바닥에 1.5m 간격으로 붙은 청테이프 선에 맞춰 길게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요원들은 입구에서 응시생들을 일일이 체온을 잰 뒤 시험장으로 들여보냈다. 배모(30)씨는 “이 정도 불편은 감수할 수 있다. 오히려 시험 응시 기회가 있어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잠정 중단됐던 토익시험이 두 달여 만에 재개됐다. 지난 2월 9일 시험을 끝으로 네 차례 미뤄진 이후 처음이다. 다만 신종 코로나 감염 우려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황이라 시험주관사는 방역에 만전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시험장 입실 과정은 마치 공항 수준의 방역망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입구에서 발열 체크를 마친 응시생들은 손 소독제로 손을 닦고 안내요원들이 건네는 라텍스 장갑을 받은 뒤에야 시험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감독관이 수험생들에게 시험지와 답안지를 내주는 과정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옮겨지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다. 다만 시험주관사가 장갑 착용은 권고사항이라고 안내하자 상당수 수험생들은 손에 쥐기만 할 뿐 장갑을 끼진 않았다. 한 수험생은 “두 달 만의 시험이라 부담이 큰데 장갑은 거슬려 안 꼈다”며 “주변을 둘러보니 장갑 끼고 시험 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시험장 내부 방역도 이전보다 강화됐다. 코로나 사태 이전엔 한 시험장에 25명씩 들어가 시험을 봤지만 이날은 한 반에 20명만 들어갔다. 책상도 1.5m 간격으로 띄웠다. 실내인 점을 고려해 시험 시작 전과 듣기평가 이후 두 차례 창문을 열어 고사장을 환기시켰다.
응시생들은 잇따른 시험 연기에 따른 불만보단 지금이라도 토익시험이 재개돼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간 취업 필수 스펙인 토익 시험 일정이 계속 미뤄지면서 취업에 적잖은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취업준비생 김형수(29)씨는 “시험 일정이 두 달 넘게 미뤄지면서 몇몇 기업 채용 공고는 놓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김씨처럼 토익 시험이 급한 수험생들이 일시에 몰리면서 이날 열린 토익 시험은 접수한 지 얼마 안돼 마감됐다. 수험생은 넘쳐나는데 등교 개학을 준비 중인 중ㆍ고등학교들이 코로나 감염을 우려해 시험장 제공을 꺼리면서다. 이렇다 보니 이날 집 주변 고사장이 마감돼 어쩔 수 없이 먼 지역에서 시험을 보러 온 ‘장거리 수험생’도 눈에 띄었다.
다만 한국토익위원회가 이런 사정을 고려해 5월과 6월에 각각 한 번씩 추가 시험을 시행키로 했지만, 당분간 수험생 불편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응시생이 몰리면서 서울은 이미 5월에 예정된 세 차례 시험 접수가 모두 끝났고, 다른 지역들도 대부분 마감됐기 때문이다.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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