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증여ㆍ부동산 규제회피 의혹 1인ㆍ가족소유 법인 전수 검증
국세청, 탈세 의심 27곳 세무조사… 자금 출처ㆍ형성 과정 등 검증
가족 명의 강남 아파트 수십채 개인 법인 세워 이전하는 사례도
“고의 세금포탈 적발 땐 고발”
#. 지방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A씨는 20대 초반인 딸 명의로 광고회사를 세운 뒤 수십억 원의 병원 광고비를 몰아줬다. 회사 매출의 96%가 병원 광고비였지만, 정작 광고가 집행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딸은 서울 강남에 20억원대 아파트를 회사 명의로 구입해 살고 있는데, 국세청은 A씨가 유령회사를 세워 주택 구입 자금을 편법 증여한 것으로 보고 광고회사와 병원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 정보기술(IT) 회사를 운영하는 B씨는 회삿돈 수십억 원을 빼돌려 한강변의 40억원대 아파트와 10억원대 고급 외제차를 샀다. 개인 명의로 아파트를 사면 자금출처조사를 받을 수 있다고 보고 1인 부동산 법인을 만든 것이다.
국세청이 1인이나 가족 소유 부동산 법인에 대한 전수 검증에 나섰다고 23일 밝혔다. 부동산 규제를 피하기 위해 법인을 세워 고가 아파트를 사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우선 편법 증여와 자금출처조사 회피 등의 혐의가 있는 27개 법인이 세무조사 대상으로 적발됐다.
국세청이 밝힌 전수검증 대상은 주주가 한 명뿐인 법인 2,969개와 가족법인 3,785개다. 이들이 보유한 주택은 2만1,462채(법인당 3.2채)에 달한다.
조사에 나선 이유는 개인 명의의 아파트가 법인으로 이전되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올해 1분기 개인이 법인에 아파트를 양도하는 거래는 총 1만3,142건인데 이미 지난해 개인이 법인에 양도한 아파트(1만7,893건)의 73%다. 국세청은 이 중 편법 증여나 다주택자 규제 회피 목적의 거래가 상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세청은 법인의 아파트 구입 자금 출처, 자금 형성 과정에서의 세금 납부, 보유 아파트 매각 후 관련 세금 납부 여부 등을 검증한 뒤 탈세 혐의자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첫 세무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27개 법인은 △고가 아파트 증여(9개) △다주택자 규제 회피(5개) △자금출처조사 회피(4개) △기획부동산(9개) 등이다.
이번 조사 대상에는 강남 일대 아파트 수십 채를 가족 명의로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업자가 2017년 8ㆍ2 대책 발표 이후 여러 개의 법인을 설립해 개인 명의의 부동산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다주택자 규제를 회피하려 한 사례가 포함됐다. 고가 아파트 두 채를 보유한 병원장 C씨는 한 채는 부동산 법인에 넘겨 놓은 뒤, 나머지 한 채를 팔면서 1가구 1주택으로 신고해 비과세 혜택을 적용 받기도 했다.
임광현 국세청 조사국장은 “조사 과정에서 차명계좌를 이용하거나 이면계약서를 작성하는 등 고의적으로 세금을 포탈한 혐의가 적발될 경우에는 수사기관에 고발할 예정”이라며 “다주택자 규제를 피하기 위해 부동산 법인을 법인을 설립하는 경우에도 아파트 양도차익에 대해 중과세율을 적용하는 등 개인 다주택자의 세 부담과 형평성이 맞도록 제도개선 방안을 관계 부처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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