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만능’ 시대다. 로봇은 인간을 대리하고 때로는 대체한다. 청소부터 길 안내, 극미세 수술, 기계 제조와 조립, 더 나아가 전쟁까지. 인간을 본떠 만들어졌으나 어느새 그 인간을 월등히 뛰어넘어 버린, 그리하여 언젠가 인류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안기는 오늘날 로봇의 모든 건, 이미 1920년 출간된 희곡 ‘R. U. R. –로줌 유니버설 로봇’에서 예언됐다.
‘R. U. R.’은 대량 생산된 기계 집단인 로봇에 의해 인간이 멸종하는 암울한 미래를 그린다. 출간 직후 수많은 무대에서 상연되고,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었다. 훗날 ‘터미네이터’와 ‘블레이드 러너’ 같은 SF 영화ㆍ소설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R. U. R. –로줌 유니버설 로봇
카렐 차페크 지음ㆍ유선비 옮김
이음 발행ㆍ252쪽ㆍ1만2,000원
‘로봇’이란 단어도 이 희곡에서 처음 등장했다. 로봇은 강제노역을 뜻하는 체코어 로보타(Robota)를 따서 만든 말이다. 2020년은 ‘R. U. R.’ 출간 100주년, 로봇 탄생 100주년이다. 한국외대 체코ㆍ슬로바키어과 유선비 교수가 이 기념비적인 희곡을 새로운 번역으로 다듬어 내놨다.
우리가 지금 이 작품을 다시 꺼내 들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간 생명과 노동의 가치, 대량 생산과 집단주의, 과학 문명과 신앙, 기계와 인간의 지능 문제 등이 담긴 이 작품의 철학적 담론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이후 우리에게 펼쳐질 미래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이 작품은 지금도 물음표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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