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등락에 한방 노린 과열투자 양상
“원금 전액 날릴 수 있어” 잇단 경고음
국제유가 대폭락에도 유가 반등에 ‘베팅’한 개미들의 투기 광풍을 우려하는 경고음이 날로 커지고 있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가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장지수증권(ETN)의 ‘괴리율(실제 가치와 상품가격의 차이)’이 무려 1,000%까지 치솟는 등 비정상적인 시장 상황이 계속되는데도 “저점을 잡자”며 몰려드는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다.
전례 없는 유가 변동성에 투자자의 손실 역시 눈덩이처럼 커질 기미가 보이자 금융당국이 관련 상품 투자자의 전액 손실까지 경고하고 나설 정도다.
◇무섭게 커지는 괴리율
23일 한국거래소는 24일까지 이틀간 원유 관련 ETN 2개 종목에 대해 매매거래 정지조치를 단행한다.
대상은 ‘신한 레버리지 WTI 원유선물 ETN(H)’과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이다. 지난 9일 내놓은 1차 WTI 원유선물 관련 ETN 안정화 조치에도 투자자들의 매수 과열로 괴리율이 폭등하자 황급히 추가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괴리율은 ETN 가격과 실제 지표가치의 차이를 뜻한다. 기초자산 지수의 수익률만큼 ETN 주가도 움직여야 하는데,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지나쳐 주가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으면 지수와의 괴리율이 커진다. 지표가치보다 시장 가격이 과대평가되는 것이다. 추후 증권사가 주식을 추가 상장해 물량이 정상적으로 회복될 경우 지금처럼 비싸게 산 투자자들로선 손해가 불가피한 구조다.
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2일 신한 레버리지 WTI 원유선물 ETN(H)의 괴리율은 무려 928.16% 달했다. 이날 이 상품의 종가는 650원이었는데 괴리율 산정 근거가 되는 지표가치는 63.22원에 불과했다. 전날 종가 기준 60.91%였던 괴리율은 이날 장중 한때 1,000%까지 치솟기도 했다.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도 종가 1,600원에 지표가치가 482.12원으로 괴리율 231.87%를 기록했다. 이틀간의 매매거래 정지에도 괴리율이 정상화되지 않을 경우, 거래소는 거래 정지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대박 꿈 좋지만 쪽박 가능성도 높아”
잇단 대책의 배경엔 원유 투자 열기가 위험 수위를 넘겼다는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
거래소에 따르면 원유 가격이 바닥을 찍었다고 여긴 개미들은 지난달 초부터 약 두 달 사이에만 2조4,000억원에 가까운 자금(ETN과 원유관련 상장지수펀드(ETF) 순매수액 포함)을 유가 반등에 베팅한 것으로 나타났다. 괴리율이 1,000%에 달할 만큼 고평가된 가격에서도 개인 투자자들은 22일 하루에만 신한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290만주)을 19억원 이상 사들였다.
문제는 레버리지 종목의 경우 일간 등락률의 2배를 기초자산으로 하기 때문에 WTI 선물 가격이 50% 하락할 경우 지표가치가 0이 돼 투자금 전액 손실이 불가피하단 점이다. 지표가치가 0이 되면 추후 유가가 상승해도 이미 전액 손실이 확정돼 투자자들의 손실 복구가 불가능하다. 거래소 관계자는 “불안정한 유가 시장을 활용한 현재의 매수세는 투자금을 단숨에 휴지조각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과는 반대로 유가 하락에 베팅한 인버스 ETN 상품 투자자들에 대한 경고도 이어졌다. 23일 거래소 기업공시채널에 따르면 신한금융투자, 미래에셋대우 등 원유 인버스 ETN 6종 발행 증권사들은 전날 일제히 투자유의 안내를 공시하고 “유가 급등 시 전액 손실 위험이 있다”고 알렸다.
인버스 ETN은 레버리지와 달리 유가가 떨어지면 되레 수익이 나도록 설계된 ‘청개구리’ 상품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레버리지든 인버스든 유가가 하루에도 수십 퍼센트씩 폭락과 폭등을 오가는 극도의 변동성 장세에서 안전지대는 없다”고 경고했다.
한편 지난 20일 만기일(5월물)을 하루 앞두고 마이너스(배럴당 -37.63달러)를 기록했던 WTI는 22일(6월물) 13.78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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