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 위기인 미래통합당이 택한 선장은 결국 ‘여의도 차르’ 김종인이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이냐, 아니냐’를 놓고 옥신각신하던 통합당이 22일 비대위 체제로 전환을 결정했다. 본인의 결단과 전국위원회 의결이 남았지만, 김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통합당을 재건하고 2022년 대선 승리의 기틀을 닦는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통합당 최고위원회는 이날 국회에서 회의를 열고 비대위 체제 전환과 비대위원장으로 김 전 위원장 영입을 확정했다. 현역 의원과 21대 국회의원 당선자를 합쳐 142명 중 140명에게 전날 의견을 구한 결과 다수가 김종인 비대위 구성을 지지한 데 따라서다. 김 전 위원장은 이 같은 결정을 심재철 당 대표 권한대행으로부터 전해 듣고 “23일까지 수락 여부에 대한 답을 주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면 통합당은 28일 전국위원회를 열어 비대위 체제 전환을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이날 공개된 설문조사 내용은 조기 전당대회 의견이 우세했던 지난 20일 의원총회 결과와 달랐다. 새롭게 당을 책임질 당선자들이 김 전 위원장에게 힘을 실은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당의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고,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극복할 만한 역량을 갖춘 인사가 현재로선 김 전 위원장뿐이란 현실론이 자성론을 압도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경제 정책이나 문제적 인물에 대한 즉각 제명 결정 등 김 전 위원장이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리더십도 그에 대한 신뢰를 키운 측면이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김종인 비대위는 과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김종인 비대위를 꾸려야 한다’가 43%, ‘조기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가 31%로 의견이 갈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김종인 체제 출범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당장 당 안팎에선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앞날을 결정지은 것에 대해 ‘인정하기 어렵다’는 반박이 이어졌다. 4ㆍ15 총선에서 낙선한 심재철 당 대표 권한대행이 낙선한 의원들까지 포함시켜 당의 미래를 결정하는 게 적절한가라는 이유에서다. 정진석 의원은 심 권한대행을 겨냥해 “집 비우고 떠나는 사람이 ‘인테리어는 꼭 고치고 떠나겠다’고 우기는 형국”이라며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당선자 대회의 개최, 새 원내대표의 선출”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우 의원도 페이스북에 “아무리 급해도 모여서 토론도 제대로 해 보지 않고 전화 여론조사라니”라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헌ㆍ당규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비대위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2022년) 대선을 제대로 치를 수 있는 준비까지는 해줘야 한다”고 했다. 당헌ㆍ당규를 초월하는 ‘전권’과 ‘최대 2년의 임기’를 조건으로 제시한 셈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비상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비대위에 긴 임기를 보장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영남권의 한 중진 의원은 “비상체제를 길게 끌고 가겠다는 발상은 비정상적”이라고 주장했다. 통합당은 지난 2월 출범 당시 8월31일까지 전당대회를 열어 새 당 대표를 선출하기로 당규에 못박았다. 김 전 위원장에게 그보다 긴 임기를 보장하려면 당규를 고쳐야 하는데, 지금의 당 분위기 상 수정안이 전국위에서 통과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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