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봄은 봄답지 않게 지나갔다. 봄을 만끽하기에는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나이 많은 분들에게는 더욱 힘든 봄이었다. 어느 때보다 가족이 소중하게 느껴지던 지난 몇 달간이었다.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했다. 그리고 이제 5월, 가정의 달이다. 그리고 어버이 날이다. 혹시 사회적 격리로 코로나 효도가… 웃프다.
한창 현역에서 일하던 시절, 호되게 아팠던 때가 있다. ‘주마등’이 뭔지 알게 해 주는 체험까지 했다. 밤낮 없이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하다 보니 몸에서 경고신호를 보낸 것이다. 아프기 전엔 매일 아침저녁으로 모친께 전화로 안부를 여쭙고 이런저런 소소한 일상을 나눴었다. 다행히 치료가 잘 돼 요양하고 있을 때 어머님은 ‘매일 이렇게 전화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이제 매일 연락하지 말고 서로 무슨 일이 있을 때만 통화하자’고 하셨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처음엔 일주일에 한두 번 전화하다가 그것도 익숙해지고 나선 정말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만 연락을 드리게 됐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순을 넘은 오늘에 이르니 나의 어머님이 그때 참 외로우셨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 선배들도 말년에 부모님을 너무 외롭게 해 드렸다는 후회 섞인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돌아보면 가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부모님의 말들은 푸념과 투정으로 가득했다. 늘 어디가 아프고, 항상 주머니가 가볍고, 옆집 할멈은 아들이 해외여행을 근사하게 보내 줬고 뒷집 영감은 며느리가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최고급 건강검진을 시켜 줬다는 유의 이야기들 말이다. 부모님의 어린아이 같은 투정을 듣고 있노라면 그래도 뭔가 근사한 선물이라도 하나 해 드려야겠다 싶어 뭐가 필요하시냐고 물으면 늘 돌아오는 대답은 ‘나 신경 쓰지 말고 너희끼리나 잘 살아라’였다. 알다가도 모를 노부모들의 진짜 속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다 보면 또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만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은 도대체 왜 가뜩이나 먹고 살기 바빠 지쳐 있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가? 자식들을 출가시켜 놓고 가끔 놀러 오는 손주들의 재롱에 행복해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그 마음이 조금 보이는 듯도 하다.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당신에게 보여 달라는 마음의 다른 표현이었던 것을 말이다.
이 말이 잘 와 닿지 않는다면 연인과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오늘 점심엔 뭘 먹었는지 궁금해 수시로 전화와 카톡을 보낼 뿐만 아니라 하루를 마치면 그날 있었던 일들을 시시콜콜 나누니 그 사이에 투정과 불평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부모자식 관계도 다르지 않다. 매일 통화하고 나의 사소한 일상을 나눠보자. 자식은 부모의 면류관이라지만 정말 원하는 건 어쩌면 돈다발이나 화려한 선물이 아닐 수도 있다. 정말 필요한 건 자식이 늘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 관심 받고 있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일지 모른다.
부모님의 불평이 너무 많다고 힘들어하지 말자. 이 투정이 자식에겐 효도를 할 기회니 말이다. 이 기회는 무한하지도 때가 있지도 않다. 지금의 기회를 잡아야 나중에 한탄하지 않는다.
부모들도 자식들에게 효도할 기회를 마음껏 주시라. 정말 사랑한다면 혹시라도 자녀에게 부담 줄까 서운한 마음을 숨기지 마시라. 더 많이 표현하시라. 더 자주 보고 싶고 더 자주 목소리 듣고 싶다고 당당하게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시라. 이제 와 보니 많은 시간을 같이 하지 못했음이 아프다. 그리고 절절이 그렇다.
풍수지탄(風樹之歎)이라 했던가. 돌이켜 보니 작은 것 또한 후회스럽지 않은 것이 없고 큰 것 또한 후회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이제 이야기할 수 없고 안을 수 없으니 생각 속에 있을 수밖에… 그게 어버이의 모습 아닐까? 내 생각 속의 엄마와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후회도 같이 한다. 그리고 오늘 참 울 엄마가 그립다, 울 엄마가 보고 싶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ㆍ성균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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