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호황을 맞은 사업 중 하나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다. 지난달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 이후 미국에서만 이용량이 30% 늘어났다고 한다. ‘집콕’ 미국인 사이에서 단연 최고 인기 OTT 콘텐츠는 넷플릭스의 7부작 다큐멘터리 ‘타이거 킹: 무법지대’다. 지난 17일 미국 연예전문 매체 할리우드리포터에 따르면 지난달 마지막 주 ‘타이거 킹’의 총 시청시간은 53억분으로 미국 SVOD(한달 동안 일정액을 내고 보는 VOD) 순위 1위였다.
□ ‘타이거 킹’은 호랑이 사자 치타 등 고양이과 맹수를 활용해 돈벌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남편이 둘인 조 이그조틱이라는 인물은 오클라호마의 사설 동물원에 맹수 187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관광객 대상의 여러 이벤트로 나름 건전하게 돈을 버는 듯하지만, 맹수를 몰래 팔아 벌어들이는 수익이 더 컸다. 하지만 고양이과 맹수 보호 운동가 캐롤 배스킨이 이그조틱의 부도덕성을 공격하며 그의 사업을 위태롭게 만든다. 이 정도면 ‘호기심 천국‘ 수준. 배스킨은 남편 살해 의혹을 받고 있고, 자원봉사자의 선의를 악용한다는 비판이 따른다.
□ 한국 막장 드라마 저리 가라 할 다큐멘터리의 밑바닥에는 미국 남부 백인 하위계층 ‘레드넥(Red Neck)‘의 삶이 흐른다. 배스킨은 10대 때 가출해 첫 번째 결혼을 한 레드넥이었다. 역시 레드넥 출신인 이그조틱은 숙식 제공을 미끼로 갈 곳 없는 실업자들을 꼬드겨 노동력을 착취한다. 숙식이라고 해야 허름한 트레일러와 유통기한 지난 음식이다. 이그조틱의 멘토는 왕국 같은 사설 동물원을 운영하는데, 아내가 예닐곱 명이다. 일자리와 승진을 미끼로 여직원들과 잠자리를 같이하고 이들을 아내로 묶어둔다. 저소득과 저학력의 악순환이라는 사회 환경이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 다큐멘터리 속 맹수를 둘러싼 엽기적 해프닝의 본질은 돈이다. 다큐가 기이한 인물들을 통해 까발리는 건 약탈적인 미국 자본주의의 민낯이다. 레드넥은 2016년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일등공신이고, 트럼프 재선을 뒷받침할 강력한 지지세력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약자 혐오 인물을 지지하는 건 지독한 아이러니다. ‘타이거 킹’의 부제는 원래 ‘살인, 아수라, 광기(Murder, Mayhem, Madness)’다. 약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미국 사회는 그렇게 표현된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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