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변화, 코로나 총선 이후] <4> 삶의 화두로 떠오른 국민안전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 후보를 찍었던 직장인 김모(49)씨는 이번 4ㆍ15 총선에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 여야 후보들이 내건 공약은 어차피 허울뿐인 ‘공(空)약’이라 여긴 김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성공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정부ㆍ여당에 힘을 실어줬다고 했다. 김씨는 “사태 초기 정부 대책에 반신반의했지만,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수많은 환자가 사망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게 됐다”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노력하는 쪽에 표를 줘야 한다는 생각이 무엇보다 앞섰다”고 말했다.
과거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 재난들은 대체로 ‘시작’과 ‘끝’이 분명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 등은 사태의 비극성에도 불구하고 공간과 시간적 경계가 선명했다. 감염병도 다름 아니었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ㆍ사스)은 유입차단, 신종플루(2009년)는 치료제인 타미플루와 백신이 개발돼 유행이 종식됐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의 주된 감염통로는 병원내였고 유행 기간도 짧았다. 이와 달리 신종 코로나는 유행의 끝을 알 수 없고 피해 규모를 판단할 수 없는 재앙이라 국민의 불안이 전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방역 전문가와 당국은 계속해 “겨울철 유행이 다시 온다”는 경고를 할 정도였다. 이로 인해 신종 코로나 유행 이후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의 지속 가능한 재난관리 능력에 이전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신종 코로나 사태 발발 이후 국민안전이 선거 국면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음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조사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리얼미터의 4월 셋째 주 집계 결과 문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선거 전후 추세를 유지하며 58.3%로 나타났다. 2018년 평양 정상회담 이후 최고치이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 사태처럼 생명과 일상에 위협을 주는 상황을 장기간 마주하게 되면 대중은 ‘안정지향’적 입장을 고수하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이런 행태는 정치적 행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신종 코로나는 국민에게 ‘언제든지 일상이 무너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며 “인간은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하면 예술이나 사회활동 등 상위욕구가 아닌 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안정)욕구에 집중하기에 이러한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킨 여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고 진단했다.
언제 종식될지 모를 신종 코로나 사태 해결과 함께 향후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국가적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선 정치권이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분석도 주류를 이룬다. 위험사회의 특성이 짙어질수록 안전관리 능력으로 기우는 표심을 잡으려면 당연한 수순이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보건의료 사회운동가들은 의료 이익단체 등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정치인들을 개인과 이익단체의 이권을 쫓는 ‘청부 국회의원’이라 부른다”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서라도 이런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는 것부터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이번 선거에서도 자칭 보건의료전문가로 국회에 입성한 당선자들이 신종 코로나 사태 등 감염병 문제에 대해 어떤 대안을 제시할지 의문”이라며 “과거 경력이 아닌 실제로 안전을 지탱할 능력을 지닌 전문가들이 국회에서 활동할 수 있게 국민이 이후에도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안전이 최대 화두가 된 시대에 맞는 소통능력을 정치인들이 길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현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는 “현 정부가 신종 코로나 사태에서 가장 잘한 일은 실제 방역을 총괄하는 현장 책임자에게 마이크를 넘긴 것”이라며 “이성적이고 현명한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상황을 알리고 협조와 동의를 구할 줄 아는 정치인이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주 당선자(더불어민주당ㆍ전북 전주시 병)는 “이제 정치권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신종 감염병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며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없이 당리당략만 쫓으면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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