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구나! 생생과학]
전세계 프로축구 시즌이 중단되지 않았더라면 승리를 위해 질주하는 선수들 너머로 취재에 분투하는 카메라 기자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을 계절이다. 터치라인 바깥에서 결정적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잔뜩 웅크린 그들의 무기는 기다랗고 육중한 망원렌즈. 시쳇말로 ‘바주카포’ ‘대포’로 불리는 이 렌즈는 멀리 있는 피사체를 눈앞에 있는 것처럼 촬영할 수 있어 야생조류 사진이나 천체 관찰에도 맞춤하다.
하지만 최근 출시되는 스마트폰은 카메라용 망원렌즈에 못잖은 고배율 촬영 능력을 자랑한다. 삼성전자 신형 스마트폰 ‘갤럭시 S20’의 최상급 모델인 S20 울트라의 경우 내장 망원렌즈로 화질 저하 없이 피사체를 10배까지 확대해 찍을 수 있고 인공지능(AI) 보정 기술을 가미하면 최대 100배 줌 촬영이 가능하다. 제품에 따라 길이 50㎝, 무게 5㎏에 육박하는 ‘바주카포 렌즈’가 손안에 쏙 들어온 셈이다. 비결은 뭘까.
◇망원렌즈가 ‘대포’인 이유
일반 망원렌즈의 경통 길이가 긴 이유는 렌즈 특성 때문이다. 배율이 큰, 다시 말해 화각(畵角)이 좁은 렌즈일수록 초점거리가 길다. 렌즈의 고유값인 초점거리는 실제 카메라 구조에서 렌즈와 이미지센서(아날로그 카메라라면 필름)의 거리라고 이해하면 쉽다. 사람 시야각과 가장 비슷한 화각을 지닌 표준렌즈(초점거리 50㎜)이나 이보다 화각이 큰 광각렌즈(초점거리 10~40㎜)에 비해, 망원렌즈는 초점거리가 800㎜에 이르는 제품까지 있는 만큼 경통을 늘려 렌즈와 카메라 본체의 거리가 확보되도록 설계해야 한다. 더구나 하나의 렌즈 제품은 정교한 광학적 보정을 위해 여러 장의 개별 렌즈로 이뤄지는 만큼 렌즈 사이의 간격도 필요하다.
망원렌즈는 구경(口徑·렌즈 지름)도 크다. 니콘의 800㎜ 망원렌즈 구경은 160㎜로, 웬만한 표준렌즈의 2배에 달한다. 사진이 선명하기 위해선 피사체로부터 온 빛이 충분히 렌즈를 거쳐 이미지센서에 도달해야 하는데, 이때 빛의 양은 렌즈 구경에 비례하고 초점거리에 반비례한다. 초점거리가 긴 망원렌즈가 빛을 넉넉히 확보하려면 큰 렌즈를 써야 하고 그렇다 보니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발상의 전환, 렌즈를 눕히다
망원렌즈의 설계 원리를 감안하면 이를 장착하는 스마트폰 역시 카메라 부분이 돌출되는 것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갤럭시 S20 울트라만 해도 망원 포함 4개의 후면 카메라 모듈을 덮은 이른바 ‘인덕션 커버’의 두께가 2㎜ 정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 제품의 망원렌즈는 최대 초점거리가 102㎜에 이른다. 같은 성능의 일반 카메라용 렌즈라면 10㎝ 길이의 경통이 필요한 성능이다. 또한 망원카메라를 구성하는 렌즈 대여섯 매의 위치를 물리적으로 조정하는 ‘광학줌’ 기능만으로 5배율 촬영이 가능하다.
이를 가능하게 한 건 ‘폴디드(folded) 렌즈’ 기술이다. 렌즈들을 스마트폰 본체에 수직하는 구조로 설계하는 대신 수평으로 정렬하고, 그 앞에 프리즘을 배치해 피사체에서 온 빛이 90도 굴절돼 렌즈를 통과하게 한 것이다. 잠망경 원리를 이용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폴디드 렌즈 모듈을 개발·공급한 삼성전기 관계자는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내장 카메라의 광학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부딪친 문제가 이른바 ‘카툭튀(카메라가 툭 튀어나옴)’ 문제였다”며 “프리즘과 렌즈, 이미지센서를 나란히 눕히는 방식을 통해 높이의 제약을 극복하고 망원렌즈에 필수적인 초점거리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기술로 100배줌 완성
갤럭시 S20 울트라의 망원카메라가 렌즈의 순수 광학적 성능을 넘어선 고배율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비결은 디지털 기술이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기기가 피사체를 화질 저하 없이 촬영할 수 있는 최대 배율은 10배로, 광학줌 최댓값보다 2배 높다. 디지털 카메라가 광학줌을 초과하는 배율을 구현하는 ‘디지털줌’은 근본적으로 촬영된 사진을 소프트웨어를 통해 확대하는 과정이라 화질이 떨어지기 쉽다. 복사기의 ‘확대’ 기능을 사용하면 원본보다 화질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한계를 최소화하는 건 이미지센서다. 갤럭시 S20 울트라는 카메라 해상도를 획기적으로 개선, 카메라별로 최대 1억800억화소의 이미지센서를 장착했다. 사진 해상도를 높이면 디지털줌을 통해 특정 부분을 확대하더라도 또렷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아울러 망원렌즈와 짝을 이룬 4,800만화소 센서는 촬영 환경에 맞춰 사진 선명도를 최적화하는 ‘테트라 비닝(Tetra binning)’과 ‘리모자이크(Re-mosaic)’ 기능을 발휘한다. 전자는 저조도 환경에서 4개의 픽셀(화소)을 하나로 결합해 더 많은 빛을 받아들이게 하고, 후자는 컬러 픽셀을 재정렬해 밝은 환경에서 피사체의 디테일을 살려준다.
100배 줌을 뒷받침하는 기술은 ‘슈퍼 레졸루션 줌(Super Resoultion Zoom)’이다. 이는 AI 기반으로 저해상도 이미지를 고해상도로 바꾸는 기술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은 뒤 딥러닝(기계학습)을 통해 선명하게 합성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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